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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 Fusion Story
  • ITER

201802.07

5천톤 인공태양을 레고처럼?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iter/779

ITER 진공용기 첫 조각, 우리 기술로 완성 

 

 레고로 조립하는 ITER. 현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사진출처=ITER>


 어렸을 때 레고 많이 해보셨지요? 작고 단순한 블록만 있으면 해적선이며 우주왕복선까지 지구상의 어떤 구조물도 정교하게 재현해내는 게 큰 매력이지요. 덕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놀이인데요. 인류 최대의 국제협력 프로젝트인 ITER 역시 이들의 창의적인 관심사에서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표준 레고 조각만으로 ITER를 재현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레고본사 역시 정식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는 높이가 약 30m에 이릅니다. 전체 부피로 보면 KSTAR의 25배가 넘는 거대 장치이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 엄청난 크기의 ITER 역시 레고처럼 크고 작은 부분품들을 정교하게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초대형 구조물의 제작을 한국이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ITER 진공용기 최초의 ‘조각’이자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될 세그먼트(segment)를 완성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국가핵융합연구소 진공용기기술팀 김현수 박사와 함께 이번 첫 세그먼트 완성의 과정과 의미를 되짚어보았습니다. 

 

 

한국에서 모습 드러낸 진공용기 최초 구조물

 

 “First segment completed in Korea” 지난 15일 ITER 국제기구가 홈페이지(www.iter.org)를 통해 첫 번째 진공용기 구조물의 완성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습니다. 진공용기는 ITER 국제기구가 사업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장치로 지정하고 진행상황을 면밀히 관리 중인 사안입니다. 진공용기는 핵융합로에서 실제 태양처럼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도록 플라즈마를 가두는 공간입니다.


 ITER 진공용기는 높이 13.7m, 무게 5천 톤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데요. 이 거대한 장치 내부에 우주와 같은 진공상태를 구현한 뒤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만큼 진공용기 제작에 필요한 기술적 난이도는 매우 높습니다. 또한 진공용기는 핵융합 반응의 결과로 발생하는 중성자의 1차 방호벽인 데다 다양한 내벽구조물을 지지해야 하는 기초구조물이라 더욱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진공용기의 기초구조물에 해당하는 36개 세그먼트 중 첫 번째 세그먼트가 한국에서 완성돼 국제 핵융합계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초대형 진공용기 제작의 난제를 가장 먼저 돌파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ITER 진공용기 세그먼트. <사진출처=ITER>


 도넛처럼 원통 형태인 ITER의 진공용기는 대형블록을 연결해 조립하는 선박 건조방식처럼 9개의 대형 섹터로 나누어 제작됩니다. 당초 우리나라는 그 중 2개의 섹터를 국내 조달품목으로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KSTAR 진공용기의 설계와 제작에 참여하며 쌓은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10년 진공용기 2개 섹터(Sector #6,#1)의 제작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더불어 현대중공업은 2016년 당초 유럽연합이 맡고 있던 2개의 섹터(Sector #7,#8)를 추가로  수주하게 되었습니다. 전체 9개 섹터 중 절반에 가까운 4개의 섹터를 한국에서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한국 기업이 지닌 우수한 기술력과 제작환경을 세계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결과입니다.

 

 그 중 현대중공업이 이번에 완성한 세그먼트는 6번 섹터의 구성품입니다. 6번 섹터는 ITER 진공용기 총 조립의 기준점으로 이 섹터가 먼저 자리를 잡고난 뒤 다른 섹터들이 순서대로 조립됩니다. 총 9개 섹터 중 가장 먼저 제작되는 만큼 각종 기술적 난제들도 함께 먼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ITER 국제기구로부터 ‘ICE Breaking’으로 불렸던 품목입니다. 얼음을 깨고 길을 내는 역할이란 표현이지요.

 

 전례가 없던 초정밀 초대형 장치를 제작하는 만큼 요구되는 성능조건과 검증의 과정 역시 험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작에 착수한 지 7년여 만에 첫 결실을 거둔 국가핵융합연구소 진공용기기술팀과 현대중공업은 특히 설계상의 복잡한 3차원 형상과 이중벽 구조를 정밀한 치수에 맞춰 제작하는 게 가장 벅찬 과제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ITER 진공용기와 내부단면도. 녹색 부분이 최초로 완성된 폴로이달 세그먼트.<사진출처=ITER>


숱한 난제극복에 국제적 관심 “한국이 쇄빙선”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타래 풀어내듯 극복하면서 그 중 난제로 다가왔던 부분을 김현수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ITER 진공용기는 내벽과 외벽의 이중구조로 설계되었는데 프랑스 원자력압력용기 법령에 맞춰 제작해야하기 때문에 기존의 공학기술로는 접근이 무척이나 힘들었죠.(웃음).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자인데, 법령에 따라 적합한 제작기술을 일정에 맞게 개발하여 적용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어요.” 특히 용접부에 대해서는 100% 완전하다는 기술적 검증이 필요했는데 통상적인 비파괴검사 기술로는 이중구조의 경우 접근경로가 제한되기 때문에 진단과 측정이 무척이나 어렵다고 토로합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겠지요.

 

 ITER 진공용기의 섹터들은 무수히 많은 성형과 용접을 통해 제작됩니다. 특히 60mm 두께의 스테인레스강 소재 내벽에 차폐블록과 블랑켓, 다이버터, 코일과 진단장치 등 수많은 내벽 부품을 촘촘하게 조립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정밀한 제작치수가 요구됐습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관련분야의 국제전문가들조차 과연 그렇게 정밀한 성형과 용접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만큼 어려운 문제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ITER 진공용기는 양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제작진의 어깨는 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양산제품은 출시 후 다소 문제가 있거나 목표 성능이 구현되지 않더라도 후속 제품에 개선사항을 반영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ITER 진공용기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데다 다시 물릴 수도 없는 장치입니다.

 

 ‘한 번도 못 가본 길인데 다시 돌아가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쳐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도 세계 최초의 초전도 토카막 건설에 성공한 한국의 연구자와 기술진은 다시 한 번 용감하게 얼음을 깨며 전진했습니다. 엄격한 기술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산해석기법을 이용한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실물 크기의 모형(mockup)을 만들어 시험하며 본품 제작에 대비했습니다. 

 

 또한 국가핵융합연구소-현대중공업-ITER 국제기구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검증기술들을 개발해냅니다. 본체의 주요 용접부를 완벽하게 검사할 수 있는 새로운 비파괴 검사 기술인 PAUT(Phased Array Ultrasonic Test), 초정밀 내시경장치를 이용해 내부의 용접부 치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RVE(Remote Visual Inspection) 기술 등이 그것입니다.

 


인도에서 제작 납품된 격벽차폐체를 조립한 후 육안검사를 수행 중인 제작팀. <사진제공=국가핵융합연구소>


 한국이 첫 번째 세그먼트 제작을 통해 거둔 성과는 비단 이뿐만이 아닙니다. 완성에 이르기까지 7년여의 지난했던 과정과 절차는 한 순간도 빠짐없이 정확하고 꼼꼼하게 문서화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성공적으로 개발한 새 검사기술들과 함께 다른 참여 국가와 기업들에도 고스란히 전수돼 시행착오를 줄이는 선행학습 자료로 크게 기여할 전망입니다.

 

 

“인원 절반에 성과는 두 배” 역설의 이유는?

 

 이제 남은 것은 ITER 사업의 또 다른 기록으로 남을 ‘첫 진공용기 섹터의 완성’입니다. 나머지 3개의 세그먼트 역시 80%의 공정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핵융합연구소와 현대중공업은 올해 내 6번 섹터의 조립을 완료하고 내년 2월 운송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향해 더욱 깊숙이 가속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인도와 러시아가 맡고 있는 격벽차폐체와 상부포트 구조물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4개 진공용기 섹터와 40여 개 메인포트, 진공용기 지지구조물의 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만큼 체계화된 국제협업시스템을 통해 참여국 간의 긴밀한 협력과 예기치 못한 기술적 이슈에 대응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ITER는 2025년 최초 플라즈마 발생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가 책임지고 있는 모든 진공용기 구조물이 2021년까지 완성되어야 합니다. 생각처럼 그리 여유 있는 일정이 아닙니다. 한국의 제작팀이 첫 세그먼트 성공의 기쁨을 뒤로 하고 다시 바짝 운동화 끈을 죄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세그먼트 완성을 향한 손길이 분주하다. <사진출처=국가핵융합연구소>


 다른 ITER 사업 참여국들의 동종업무 부서와 비교하면 국내의 진공용기 전담인력은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맡고 있는 구조물의 수나 진행상황은 배 이상 많고 또 빠릅니다. 이런 역설의 이면에는 연평균 출장 일수만 140일에 달한다는 진공용기기술팀원들의 땀과 노고가 숨어 있습니다.


 김현수 박사가 전하는 진공용기기술팀의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여러 나라와 함께 해나가는 일이다보니 밤낮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명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늘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ITER 국제기구는 한국과 EU, 러시아 등 3개국 9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진공용기의 적기 완성을 위해 특별 전담 조직인 진공용기프로젝트팀(Vacuum Vessel project tea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총괄 책임자도 한국인 최창호 박사입니다. 인류 최대의 국제협력 프로젝트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 핵융합 과학기술인들의 모습이 나라 안팎에서 모두 돋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연신 한파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곳 국가핵융합연구소 진공용기기술팀의 열정은 뜨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진공용기 구조물이 최종 완공되고 ITER에 최초 플라즈마가 발생되는 그 날까지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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