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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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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허남일 박사의 ‘10년 ITER 체험기’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iter/792

ITER 국제기구가 건설 중인 프랑스 카다라쉬 모습 <사진출처=ITER>

 

 

 한국에 돌아온 지 석 달째.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이 그를 기다립니다. 허남일 책임연구원(ITER 한국사업단 열차폐기술팀장)은 오랜 ITER 파견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말 국가핵융합연구소로 복귀했습니다. 그 사이 업무환경과 사무실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새로 적응하는 게 그리 녹록지 않지만 허 박사는 다시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10년 10개월, 9천km의 시공간을 넘어 늘 한가지였음을 되새기며 오늘도 기운차게 현관문을 나서는 그를 만나 보았습니다.

 

 

기계공학자, 핵융합을 만나다

 

 허 박사는 20년 전 핵융합 연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원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속 연구원이던 그는 1997년 미개척지나 다름없던 KSTAR 프로젝트로 이적을 결심합니다. 기계공학을 공부한 그에게 핵융합은 생소한 세계였지만 새로운 분야, 또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일이 될 것이란 믿음이 그의 도전정신을 자극했습니다.

 

 “KSTAR는 당시 개념설계 단계였습니다. 다양한 공학 분야에서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필요하였지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던 핵융합 장치를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안갯속에서 길을 더듬는 것처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고민한 스케치들이 현실로 바뀌는 것을 보는 과정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이 왜 밤잠을 잊어가며 작품활동에 매달리는지 이해가 될 만큼 말이지요.”

 

 전공 분야 중에서도 특히 설계를 좋아한 허 박사는 직접 고안한 개념설계가 제작업체와의 상세 엔지니어링 과정을 통해 최종설계로 확정되고, 또 실제 토카막과 주요 구성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정말 즐겁게 일했던 때”라며 환하게 웃는 허 박사의 눈가에서는 그 시절의 순수한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10년 10개월 간의 ITER 파견생활을 마치고 복귀한 허남일 책임연구원.

 

 많은 이들의 열정과 노고 속에 KSTAR 연구장치가 서서히 골격을 드러내던 무렵, 해외에서는 또 다른 초대형 국제협력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KSTAR 연구장치를 본보기 삼아 계획되고 있던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가 회원국 간의 오랜 협의 끝에 2005년 마침내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부지를 확정한 것입니다.

 

 때마침 KSTAR 연구장치에서 진공구조물 설계와 제작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던 허 박사는 신설된 ITER 한국사업단의 구성원으로 새로운 업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에게 새로 맡겨진 업무는 전통적인 엔지니어의 업무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인류 최대의 공동프로젝트에서 한국이 분담할 사업비를 산정하고 조달품목을 협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연구소 내 신설된 사업단이기 때문에 동료들 대부분 낯선 업무와 환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춧돌을 놓는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사업단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2년여 정도가 흘러서 2007년, 국회가 마침내 오랜 진통 끝에 한국의 ITER 사업 참여를 결정하게 됐지요. 휴가도 제때 못 챙기고 초긴장 상태로 예산안 통과를 기다리던 우리 ITER 한국사업단 구성원들도 그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KSTAR 설계자에서 ITER 사업의 플래너로

 

 한국의 ITER 사업 참여를 목 빼고 기다린 건 ITER 기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업부지 선정 이후 프랑스 카다라쉬에는 회원국의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하나둘씩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ITER 국제기구를 공식 발족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용과 일정, 기술 관리까지 ITER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릴 ‘설계자’들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이미 KSTAR 연구장치부터 ITER 한국사업단 구축에 이르기까지 핵융합로 구현의 절차 전반을 두루 경험하고 축적한 허 박사를 파견의 적임자로 보았습니다.

 

 2007년 여름, 허 박사는 세계 최대의 핵융합로가 건설될 카다라쉬로 향했습니다. 지중해와 인접한 프랑스 남동부의 화창한 날씨가 그와 가족을 반겼습니다. 하지만 허 박사가 근무하게 될 건설예정지는 컨테이너 사무실 몇 개뿐 그냥 텅 빈 들판이었습니다. ‘또 한 번 맨땅에 헤딩이구나.’ 허 박사는 다시 한번 심기일전 정신을 가다듬게 됩니다.

 

 

2007년 10월 공식발족 무렵의 ITER 국제기구. <사진출처=ITER>

 

 ITER 국제기구가 허 박사에게 맡긴 분야는 ‘열차폐체(thermal shield)’입니다. 열차폐체란 -268℃에서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는 초전도자석이 안정적으로 저온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단열층입니다. 허 박사가 참여한 KSTAR의 열차폐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열을 막기 위해 총 30개 층의 다중절연재와 은도금 된 스테인레스 판으로 만들어진 38,000㎡, 축구장 여섯 배 규모의 큰 구조물입니다. ITER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KSTAR의 20배 규모로 계획되고 있었다. 열차폐체 역시 높이와 직경이 각각 25미터, 무게가 약 900톤에 이르는 초대형구조물인 만큼 허 책임연구원에게도, ITER에게도 큰 도전과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 박사는 KSTAR와 ITER 한국사업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ITER 열차폐체의 큰 그림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습니다. ITER의 열차폐체는 KSTAR를 롤 모델로 설계가 이뤄졌습니다. 한국이 설계는 물론 100% 제작을 전담하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극저온의 저온용기와 태양보다 뜨거운 진공용기 사이에서 열전달을 차단하는 핵심장치인 만큼 무엇보다 풍부한 지식과 제작 노하우가 필요했습니다.

 

“당초 프랑스 파견 기간을 1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5년, 다시 10년으로 늘어났지요. ITER 국제기구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파견 신분으로 와 있던 필수 구성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ITER 국제기구의 열차폐체 그룹 리더로 책임을 맡게 된 허 박사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엔지니어들과 함께 더욱 선진적인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투입비용과 스케줄, 인력계획부터 시작해 총 3단계에 이르는 설계검토와 조달, 이후의 제작과 설치에 이르는 프로세스 전반을 기획하고 집행했습니다.

 

ITER 토카막 엔지니어링 팀과 함께 국내 열차폐체 제작 설비를 점검하러 온 허남일 책임연구원

 

 

들깻잎, 참나물과 함께하는 저녁

 

 장기간 해외 주재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맡은 임무는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삶의 환경은 사뭇 달랐을 듯합니다. 허 박사는 “나와 가족 모두에게 인생에 다시없을 큰 경험”이었다며 카다라쉬에서의 두 가지 일상 키워드로 ‘쾌적한 기후’, ‘가족과 함께한 저녁’을 꼽고 있습니다.

 

 ITER 건설현장은 옛 프로방스 지역입니다. 알프스와 지중해에 면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름난 곳이지요. 칸과 니스, 아비뇽 같은 관광도시와도 멀지 않습니다. 연중 300일 이상 햇살이 이어지는 온화한 기후 덕분에 포도와 레몬, 곡물들이 잘 자라는 풍요로운 농경 지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다라쉬 자체는 넓은 평야 지대 속의 전형적인 시골 농촌 마을입니다. 따로 여가를 즐길 만한 곳이 없는 만큼 ITER 국제기구는 종종 ‘게임 데이’와 ‘가족의 날’ 같은 소소한 이벤트들을 마련해 연구원들의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주곤 했습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가까운 알프스나 지중해 연안을 찾아 캠핑과 스키를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일에는 퇴근 후에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허 박사의 가족도 텃밭을 마련해 직접 기른 들깻잎에 삼겹살을 싸 먹으며 향수를 달래곤 했습니다. 한국인 동료들이 늘어나면서부터는 인근의 한인회나 재불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등과 함께하는 모임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무실과 한국인 커뮤니티를 벗어나 저녁 시간 대부분을 보게 되는 현지인들과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ITER 국제기구 한국의 날, 허남일 박사 가족과 퇴근 후 소일하던 텃밭, 새로 지어진 ITER 국제기구 헤드쿼터의 모습.

 

 “영어가 통하지 않는 작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 집을 마련했지만,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어요. 프랑스인들만의 특이한 문화와 정서가 분명하긴 해도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가 거기라서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었지요. 식당을 예약하거나 장을 볼 때 쓸 서바이벌 불어 몇 가지만 익혀놓으면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으니 앞으로 ITER 현장에 나갈 분들도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ITER 현장에서 거둔 열매 “자부심, 책임감, 연대의식” 

 

 지난 1월 한국으로 복귀한 허 박사는 현재 ITER 한국사업단의 열차폐체기술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ITER 현장에서 한 차원 더 높게 쌓은 식견과 안목으로 한국이 100% 제작을 책임지고 있는 ITER 열차폐체의 적기조달을 위한 업무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ITER 한국사업단은 최근 열차폐체 전체를 5나노마이크로미터 두께로 균일하게 은도금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설비를 구축했습니다. 초대형구조물의 정밀 은도금은 ITER 열차폐체의 성능을 좌우할 핵심기술로 손꼽혀 왔습니다.

 

 “ITER 열차폐체는 극저온에서 운전되는 구조물로 복사, 전도 등의 열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입니다. 인공위성이 금박으로 된 다층박막단열재로 열복사를 막는 것처럼 ITER 장치도 은도금을 이용해 열을 제어해야 하지요. ITER 열차폐체의 경우 도금에만 약 5톤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너무 비싼 금 대신 차선책으로 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허 박사는 세계적으로도 시도된 바 없던 초대형 구조물 은도금 공정과 기술, 설비가 모두 확보된 만큼 ITER 국제기구가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정확하게 열차폐체를 조달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습니다. ITER 한국사업단은 3월 현재 은도금 설비 및 공정에 대한 품질검증을 완료하고 올해 가을 하부저온용기 열차폐체 실린더 첫 운송을 시작합니다. ITER 열차폐체의 모든 조달이 완료되는 시점은 2020년입니다.

 

귀국 두 달 전인 2017년 10월 ITER 10주년을 맞아 촬영한 단체 기념사진. <사진출처=ITER>

 

 언제나처럼 찾아오던 계절이지만 허 박사에게 이번 봄이 더 각별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이역만리 타국에서 씨 뿌리고 가꿔 온 ITER 열차폐체가 마침내 한국 땅에서 봄꽃 터지듯 만개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를 설레게 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ITER 현장에서 크게 활약할 만한 젊은 동료 연구원들이 부쩍 더 눈에 많이 띄기 때문입니다.

 

 허 박사가 오랜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 수십 명 수준이던 ITER 국제기구는 직원 수 800여 명의 큰 조직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연구와 업무에 불편함 없는 번듯한 근사한 헤드쿼터 건물도 들어섰습니다.

 

 KSTAR 운영이 안정화된 이후 한국에서 파견되는 연구원들의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국가핵융합연구소 2대(2008~2011) 소장을 역임한 이경수 박사가 2015년 ITER 국제기구 사무차장으로 선임된 것은 한국인 연구자들의 물리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높아진 위상을 함께 확인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경수 사무차장의 역할이 ITER 장치의 설계, 건설, 설치, 시험, 시운전부터 시스템 운영까지 실질적으로 기술부문 모두를 총괄하는 중책인 만큼, ITER 국제기구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구자들의 책임감 역시 더 높아졌다는 게 허 박사의 전언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허 박사는 10년여 파견 생활의 가장 큰 소득이 “ITER와 같은 초대형 국제협력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라 강조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동료 연구원들에게 적극적으로 ITER 파견을 추천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프로젝트의 중심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동기부여뿐만 아니라 자부심, 책임감, 그리고 세계인과의 연대의식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며 더 많은 한국인 연구자들이 카다라쉬로 향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ITER 파견은 업무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졌지요. 국가적으로도 우리 연구원들의 ITER 파견은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은 ITER 건설비의 9% 가량을 분담하는 데다 조달품목을 10개나 책임지고 있지만 이런 중요한 역할에 비해 연구자 파견 규모는 ITER 국제기구 전체 인력의 4%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미래 상용핵융합로 개발의 주역이 될 동료 연구원들이 ITER 현장을 통해 더 넓은 지평을 바라볼 수 있도록 또 열심히 씨를 뿌리겠습니다.”

 

ITER 국제기구에서 일해 볼까? ☞ http://fusionnow.nfri.re.kr/post/iter/631

 

세계 최대의 과학기술 공동협력 프로젝트 ITER. <사진출처=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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