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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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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인공태양을 위한 최적의 전압을 찾아서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iter/796

 골목의 터줏대감 전봇대를 기억하시나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봇대 앞으로 모였습니다.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같은 놀이가 펼쳐지는 골목의 핫 플레이스였거든요. 해가지고 밤이 되면 골목을 환하게 비춰주었고요. 이삿짐센터의 단골 광고판도 되어주었죠.

 

 누가 뭐래도 전봇대의 가장 큰 임무는 가정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일입니다. 단짝인 변압기와 함께요. 전봇대 상단에 매달린 둥근 원통모양의 변압기는 고압의 전기를 가정에서 쓰기 안전하고 효율적인 220V로 낮추어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곳에 변압기가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눈여겨 본 분들은 많지 않으실 텐데요.

 

 알고 계셨나요?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장치에도 변압기를 포함하는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는 핵심부품입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가 개발‧제작한 세계 최고 성능의 변압기 2대가 지난 연말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가 건설되고 있는 프랑스 현지에 당도했습니다. 2025년 첫 플라즈마 발생을 목표로 하는 ITER 장치 전원빌딩에는 올 하반기 총 32대의 변압기가 설치될 텐데요. 우리나라가 그중 18대의 변압기 조달을 맡았습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ITER한국사업단 전원장치기술팀 김봉철 박사와 함께 변압기의 역할을 확인하고 제작 과정을 되짚어 봤습니다.

 

지난 2월 프랑스 현지에 도착한 VS1 변압기가 현장 설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기가 있는 곳에 변압기가 있다

 

ITER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변압기는 한자로는 變(변할 변), 壓(누를 압), 器(그릇 기)자를 쓰는데요. 즉 전압을 바꾸어 주는 장치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electric transformer라 부르며, 외부의 높은 전압을 ITER 장치 내 여러 초전도 코일에 알맞는 전압으로 변경하여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전압은 왜 변경해야 하는 걸까요? 김봉철 박사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220V, 미국은 주로 120V, 일본과 대만은 110V 등 전압 규격이 다양한데요. 국가 전력망이 공급하는 전기는 작은 가전제품에 사용하기에는 전압이 너무 높습니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심지어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공급받은  전기를 제품의 정격전압에 알맞은 전압으로 변환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장치가 전력변환장치이고, 그 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변압기입니다.”

 

덧붙여 변압기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전기 사용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는 설명입니다. “가정용 콘센트로 전달되는 220V의 전기는 인체에 직접 닿으면 감전사고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변압기를 매개로 외부 공급 전기가 낮은 전압으로 변경되고, 사람이 사용하는 부분과도 전기적으로 분리되어 전자기기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제가 사용하는 노트북 뒷면을 확인해보니 정격전압이 19V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직류전원장치’라고 명명된 어댑터 안 소형변압기가 220V전기를 19V로 바꾸어 주기에 감전의 우려 없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산업용, 가정용 불문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장치는 변압기가 필요한데요. 둘의 차이가 있다면 가정용은 휴대성을 위해 작고 가볍게 만드는 반면 산업용, 나아가 핵융합장치처럼 도전적인 임무를 띤 장치에 사용할 변압기는 무엇보다 성능과 안전성이 제1의 덕목입니다.

 

 

ITER에 필요한 변압기 종류만 다섯 가지

 

 다시 ITER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가전제품도 제각기 정격전압에 맞는 변압기를 사용하듯 모든 핵융합 장치들도 그 크기와 성능이 다르기에 각 장치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변압기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크기만 비교해도 KSTAR와 ITER는 승용차와 버스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KSTAR 전원장치와 비교하면 ITER는 총 파워(전력)가 커졌습니다. KSTAR용 변압기의 전력압이 0.33 GVA(기가볼트암페어)라면, ITER는 무려 2.2 GVA 수준을 요구합니다. 이는 핵융합 상용화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ITER 장치가 플라즈마의 온도를 1억℃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필요한 온도와 압력을 얻기 위해 필요한 수치입니다. ITER 장치가 기존의 핵융합 장치들보다 규모와 성능 면에서 몇 배 이상 업그레이드 된 만큼 변압기의 크기와 성능도 함께 업그레이드 돼야 합니다.

 

 또한, 한국의 상용 교류전원의 주파수가 60Hz인데, 프랑스는 50Hz이기에 변압기의 기본원리는 같더라도 규모와 성능은 전혀 새로운 변압기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KSTAR의 경험에 바탕을 뒀지만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과 다름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여기에 ITER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에 장착될 변압기만 해도 총 다섯 종류, 32대에 달합니다. 토카막장치 내 자기장 오차의 보정이 목적인 전원장치용 CC 변압기가 총 9대, 가열이 주목적인 전원장치용 CS 변압기 6대. 플라즈마의 수직 안정성을 제어하는 전원장치용 VS1 변압기 2대, 역시 플라즈마의 안전성에 관여하는 전원장치용 PF 변압기 14대 , 핵융합 플라즈마가 발생하는 진공용기 내에 도넛 형태로 자기장을 발생시켜 주는 전원장치용 TF 변압기 1대인데요.

 

ITER 한국사업단은 PF변압기를 제외한 4종류 총 18대의 변압기 조달을 담당합니다. 이중 토카막 장치의 코일 시스템에 제어전력을 공급해 주는 CCS와 VS1 변압기 중 초도품 각 1대가 지난 2018년 1월 말 프랑스에 1차로 도착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조달하는 변압기 18대 중 CCS와 VS1이 첫 대상이 된 이유는 상대적으로 용량이 적고 제작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오해는 금물입니다. 어디까지나 18대 중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것이지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특성과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5년의 세월을 핵융합(연) 연구진과 산업체, 그리고 ITER 담당자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VS1의 경우 그 크기가 8.1x5.1x5.0(m, 가로×세로×높이)이고 무게가 90톤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합니다.

 

ITER 초전도코일 전원공급장치의 주요구성

 

 초도품 생산이 중요한 이유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돌파하며 앞으로 제작될 제품의 기준을 만들고 노하우가 쌓이기 때문입니다. 핵융합(연)은 KSTAR를 건설하며 획득한 세계적인 수준의 변압기 제작 기술을 토대로 효성중공업, 다원시스 등 전문기업과 함께 ITER 변압기의 설계를 완성했습니다. ITER한국사업단 전원장치기술팀 5명의 연구원은 5년 동안 난제 해결을 위해 밤낮없이 ITER와 화상회의를 진행했으며, 변압기 제작을 맡은 ‘효성중공업’ 엔지니어들도 난이도 높은 설계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성품 제작을 위해 기술력을 총동원했습니다. 김봉철 박사는 같은 팀의 최정완 박사를 지난 6개월 동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는데요. 일당백 팀원들은 각자 맡은 미션 수행을 위해 연구소와 생산현장에서 불철주야했기 때문입니다. 

 


ITER 변압기 제작을 위해 핵융합(연), 효성중공업, ITER 국제기구가 경험과 노하우를 모았다. 핵융합(연) 최정완 박사(가운데)와 효성중공업 관계자들.
 


 김봉철 박사는 초기 설계 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기성 부품들로 기존에 없던 성능을 구현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특성과 성능은 세계 최고이지만 기본적으로 주요 부품은 품질이 검증된 기성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 부품의 성능을 고려해 설계부터 진행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기존부품으로 성능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또 어떤 구조와 조합이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도출하는 과정이 관건이었습니다.”

 

 또한, ITER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를 중국과 분담해 제작하는 만큼 향후 전원장치가 완성됐을 때 양국 장치가 오차 없이 완벽하게 협조하며 구동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중국은 1종의 변압기를 총 14대 조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종류와 성능이 다른 4종의 변압기를 총 18대 제작하고 시험검증까지 마쳐야 하는 만큼 설계 및 제작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일정 준수를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한번 채택한 결과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정용 전자제품의 변압기 개발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실에서 확인하고 결과에 따라 취사선택 할 수 있지만, 거대장치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싶다고 실험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의 실험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실험 후 다시 시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험 자체도 완벽한 검증이 전제조건입니다.

 

 

세상에 없던 변압기, 세상에 없던 검증절차를 만들다

 


CS1 변압기 단락시험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전기연구원에서 진행됐다.


 
 한국이 ITER 변압기를 개발하며 거둔 성과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완성된 변압기의 성능 검증을 위한 시험방법도 함께 개발한 것인데요. 김봉철 박사가 변압기 제작을 마친 연구진이 공장에서의 성능테스트(FAT)와 ITER의 인수검사를 앞두고 한 차례의 고비를 만났던 당시의 상황을 들려주었습니다.

 

 “변압기의 규모와 출력이 워낙 크기에 ITER 3상 변압기의 단락성능을 시험할 검증기관과 검증방법이 국내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해외에는 가능한 시험장이 있지만 해외에 시험을 의뢰하기에는 시간과 비용 등의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연구원들은 머리를 맞댔습니다. 송전탑에서 직접 전기가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는 높은 전력을 효과적으로 받기 위해 3개의 선을 이용하고, 변압기도 이에 맞춰 3상 변압기로 제작됩니다. 그런데 개발 및 제작된 변압기의 단락시험을 3상으로 한 번에 할 수 없게 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3상을 한 번에 테스트하지 말고 하나씩 나누어 각각 따로 3번 실험해서 기준치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하면 어떨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제시하자 다른 연구원들은 무릎을 치며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핵융합(연) 연구진은 곧장 효성중공업, 전기연구원과 긴밀한 협력을 추진하며 검증을 위한 수식을 세우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ITER 국제기구도 인정한 단상 방식을 이용한 3상 변압기의 새로운 단락사고 검증방법이 탄생했습니다.

 

 종종 전봇대 변압기 고장으로 정전이 됐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으시죠? 벼락과 같은 엄청난 충격이 변압기에 가해지면 단락사고(쇼트)가 발생하여 내부 장치가 뒤틀리거나 파괴됩니다. 가정이나 산업현장에서도 낡은 전선의 단락사고가 종종 화재로 이어지곤 하는데요. 엄청난 열과 압력을 견뎌야 하는 핵융합 장치이기에 단락시험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새로운 시험방법은 대용량 설비를 추가로 증설하지 않고 기존의 시험설비를 활용하기 때문에 검증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절감은 덤이었습니다. 또한, 이번에 개발된 단락시험 기술은 앞으로 대용량 산업용 변압기 설계 검증에도 활용될 전망입니다. 
 

제작이 완료된 변압기가 성능시험을 기다리고 있다.
 


 설계부터 제작, 단락시험의 최종 관문을 통과한 변압기 초도품은 이후 생산되는 16개 제품들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초도품 개발과 제작에는 5년의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미 설계와 성능이 검증됐기에 남은 제품들의 생산은 속도를 낼 수 있는데요. 효성중공업은 오는 6월까지 15대의 모든 변압기 생산을 완성한다는 계획입니다.

 

 변압기는 핵융합 플라즈마의 발생 및 유지에 필요한 필수 장비이기에 ITER 국제기구가 조달일정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품목입니다. ITER로 간 변압기들은 올 하반기부터 토카막 주장치 건물 옆에 있는 전원동에 설치됩니다. ITER 핵융합실험로의 주 동적 제어기인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시스템 전체를 총괄제어하는 MCS의 상위 제어체계인 CODAC의 제작‧운영을 한국의 박미경 팀장이 총괄하는 만큼 ITER의 전원장치, 그리고 나아가서는 ITER 프로젝트가 한국의 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TER 장치의 변압기 제작기를 접하며,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변압기의 고마움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전봇대와 변압기는 어디로 갔을까요?

 

  도로변 건널목 앞에서 무심히 보았던 회색의 사각형 상자가 바로 변압기랍니다. 전봇대에 의지해 공중을 가르던 전선들이 도시화가 진행되며 땅에 매설되자 변압기도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변압기가 우리 삶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ITER로 간 변압기도 첫 플라즈마 발생을 위해 묵묵히 활약할 것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ITER 장치 전원빌딩을 향해 부산항에서 선적 중인 변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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