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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1mm의 알갱이에서 핵융합 에너지 꿈이 자란다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32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융합 반응을 일으킬 때 나오는 에너지를 사용한다. 사진은 ITER 내부 토카막 장치 이미지. <사진 출처=ITER>

 

 핵융합 발전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 반응을 일으킬 때 나오는 에너지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얻습니다.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핵융합 연료인 셈인데요. 이 가운데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무한정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 삼중수소는 자연 상태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튬을 이용해 삼중수소를 얻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핵융합로 내에서 핵융합 반응의 결과물인 중성자와 리튬을 이용해 삼중수소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삼중수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리튬 함유 물질을 ‘삼중수소 증식재’라고 합니다. 즉 ‘삼중수소 증식재’는 핵융합 연료 생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진이 2016년 삼중수소 증식재를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더불어 국내 업체와 함께 대량 생산 장치까지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당 기술과 대량 생산 장치에 개발에 성공한 것은 세계에서 최초입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완성되면 즉시 납품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핵융합에서 삼중수소 증식재가 왜 중요할까요? 이런 삼중수소 증식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장치를 개발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연구개발을 주도한 박이현 박사(핵융합연 ITER 한국사업단)와 함께 생산 장치가 구축되어 있는 대구의 ㈜아이브이티(IVT·대표이사 조용대) 현장을 찾았습니다.

 

박이현 박사(가운데)와 조용대 대표(왼쪽 두 번째), ㈜IVT 기술진이 삼중수소 증식재 성형 장치 앞에서 기념 포즈를 취했다.

 

◇ 삼중수소 증식재 연간 50kg 생산 가능

 

 대구 검단산업단지는 섬유·기계·전기전자 등 600여 개 업체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산업단지를 관통하는 공단로 주변으로 좁은 골목이 실핏줄처럼 퍼져있고요. 골목마다 크고 작은 공장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거리는 한적했지만, 공장마다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미래 핵융합 발전에 쓰일 핵심 기능소재가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IVT가 바로 그곳입니다.

 

 진공 장비와 반도체 검사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IVT 공장에 들어서면 별도의 연구실이 눈에 띕니다. 전 직원 10명의 소규모 업체가 별도의 연구실을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핵융합연과 함께 오로지 삼중수소 증식재 생산 장치를 만들고 시험하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겉보기에 장치는 크지 않고 복잡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사기 모양의 재료 추출기가 달려있고 이것을 작동하는 기계 장치와 완성된 삼중수소 증식재를 모을 수 있는 금속 통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이 장치는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진과 ㈜IVT 기술진이 2년 동안 흘린 땀의 결정체입니다. 숱한 실패와 오류를 극복하고 완성된 세계 최초의 삼중수소 증식재 대량 생산 장치입니다. 

 

삼중수소 증식재 성형 장치.


  이 장치로 연간 50kg 분량의 삼중수소 증식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삼중수소 증식재는 직경 1mm 크기의 고체형 세라믹 볼인데요.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완성되면 삼중수소 증식재 실험에 본격 돌입하게 되고, 이때부터 연간 50kg의 실험용 삼중수소 증식재가 필요합니다. 기술 개발을 주도한 박이현 박사와 공동개발을 통해 장치를 만든 ㈜IVT가 ITER의 완공과 가동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험실에서는 주사기로 한 방울씩 떨어뜨려 페블을 만드는 방식이었는데요. 실험실 수준에서 페블을 만드는 것과 대량으로 페블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찾아야 했고요. 진공 장비나 반도체 검사 장비를 전문으로 하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일해 본 경험이 있는 ㈜IVT와 2013년부터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박이현 박사의 설명입니다.  

 

◇ 직경 1mm의 알갱이를 만들어라!

 

 삼중수소 증식재 생산 기술의 핵심은 리튬 티타늄 산화물인 ‘Li2TiO3‘를 이용해 1mm의 크기의 고체형 세라믹 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명 ‘페블(Pebble)’로 불리는데요. 이 페블의 크기가 얼마나 견고하고 균일하냐에 따라 삼중수소 증식재로서의 성능이 좌우됩니다.

 

 그렇다면 삼중수소 증식재인 페블의 크기가 직경 1mm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핵융합 반응의 원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선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 열이 발생하고 중성자도 하나 나오게 됩니다. 이 중성자가 핵융합 장치 내부 벽에 채워져 있는 삼중수소 증식재 페블을 때리면 삼중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삼중수소를 다시 핵융합 연료로 사용합니다. 무한 자가발전. 그래서 핵융합을 <설국열차>의 열차처럼 자가 발전할 수 있는 ‘꿈의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삼중수소를 잘 만들고 빼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식재 페블을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이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증식재 페블에서 만들어진 삼중수소를 가스를 이용해 잘 빼내야 하죠. 그런데 알갱이(페블)가 너무 작으면 공간도 줄어들어 가스가 잘 흐르지 못하고 삼중수소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알갱이가 너무 커도 알갱이 내에서 삼중수소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중수소 증식재 알갱이의 크기가 1mm 정도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직경 1mm의 알갱이로 만들어진 삼중수소 증식재

 

◇ 2년간 실험·실패 반복한 끝에 완성

 

그런데 이 1mm의 세라믹 볼을 만드는 공정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1mm보다 아예 작거나 크면 상대적으로 만들기도 쉽고 이미 공법도 개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직경 1mm 크기의 세라믹 볼을 대량으로 만드는 공정은 매우 까다롭고 개발된 장치도 없습니다. 실제 1mm 이하라면 분말에 액체를 뿌려서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는 방법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 3~4mm 크기는 금형으로 만들어서 프레스로 찍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1mm의 세라믹 볼을 대량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과정은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박이현 박사와 ㈜IVT 기술진은 조금만 비슷한 공정으로 물건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으면 주저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실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실험할 때는 가능성이 보여 사왔는데 막상 세라믹 볼에 적용하면 실패였습니다.

 

한 번은 반도체 공정에서 접착제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장치가 있다고 해서 구입해 적용해보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역시 실패. 그 장치는 꽤 고가의 장비였습니다. 결국, 박이현 박사는 실험 단계에서 사용했던 주사기로 떨어뜨려 만드는 원리를 적용해 ㈜IVT와 함께 직접 개발에 나섰습니다.  

 

개발 역시 쉬운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설계를 완성하고 장치를 제작했는데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아 설계부터 다시 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습니다. 구멍에서 떨어지는 알갱이가 뭉치지 않도록 주사기 축은 자전과 공전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제작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성공. 2년 동안 실험과 실패를 반복한 끝에 얻은 소중한 성과물이었습니다.  

 

대량 생산 장치 개발만 어려웠던 게 아닙니다. 연구와 실험 단계에서 박이현 박사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삼중수소 증식재를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실패를 계속하는 데 자문을 구하거나 함께 모여서 토론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핵융합로에서 삼중수소를 자가 발생시키는 원리

 

◇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삼중수소 증식재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 박이현 박사가 개발한 삼중수소 증식재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현재 삼중수소 증식재를 연구하고 있는 나라는 EU와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다섯 개 나라에 불과합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을 채택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다른 나라의 세라믹 볼 생산 방식은 알갱이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순물이 섞이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박이현 박사가 개발한 삼중수소 증식재 대량 생산 기술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으로 지금까지 나온 기술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입니다.

 

실제 박이현 박사가 실험실에서 해당 기술을 개발한 직후 나라별로 만든 삼중수소 증식재를 서로 교환해 테스트를 진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교 시험 결과 한국에서 만든 세라믹 볼의 특성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알갱이 모양(형상)도 균일하고, 강도 면(기계적 특성)에서도 가장 균일하다는 평가가 내려진 거죠.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박이현 박사와 ㈜IVT는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한창입니다. 연간 50kg에 맞춰진 생산량을 늘리는 동시에 세라믹 볼의 우수성을 더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ITER가 완공되어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연간 50kg의 삼중수소 증식재가 필요합니다. 이후 실증로(데모) 단계에서는 ITER 사용량의 약 1,000배에 달할 전망입니다. ITER에서는 핵융합 장치 토카막 내부 벽에 책꽂이 하나 정도 크기의 공간에 삼중수소 증식재를 채워 실험을 진행합니다. 이와 달리 실증로 단계에서는 토카막 내부 벽 전체에 삼중수소 증식재를 채우게 됩니다. 이때를 지금부터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삼중수소 증식재 장치를 설명하고 있는 박이현 박사

 

◇ ITER에 증식재 채워지는 순간

 

조용대 ㈜IVT 대표는 당장은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핵융합 개발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공동개발에 임했습니다. 이제 누구보다 ITER 완공과 더불어 핵융합 상용화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ITER가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힘든 과정이 많았는데 장치 개발이 완성되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눈 녹듯이 모두 사라지더군요. 국가핵융합연구소와 박이현 박사의 열정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제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낼 좋은 장치를 완성했으니 이 장치를 사용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박이현 박사 역시 ㈜IVT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당장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장치를 개발해 온 ㈜IVT가 너무 고맙죠. 한국 연구진을 주축으로 속도를 내고 있으니 ITER도 일정에 맞춰 완공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후속 연구에도 더 박차를 가해야죠.”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이었지만, 대구의 햇살은 여전이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햇살도 핵융합 발전을 앞당기기 위한 연구진과 기술진의 열정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열정이 삼중수소 증식재 대량 생산 기술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ITER가 완공되어 한국에서 만든 삼중수소 증식재가 성능을 발휘하는 날을 그려 봅니다.

 

박이현 박사와 (주)IVT 기술진이 삼중수소 증식재 대량 생산 장치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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