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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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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거대연구시설에 숨겨진 ‘초정밀 세계’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64

무게 900t 대형장비에게 허락된 조립정밀도는 단 1mm

초전도·초고진공·극저온 환경을 만드는 핵융합 초정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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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있는 토카막 핵융합 연구장치 JET의 내부 모습. <사진 출처=ITER>

 

 

 지난 5월 부산항. 정체 모를 ‘쇳덩어리’를 싣고 프랑스로 가는 배 한 척이 출발했습니다. 이 배에 실린 화물의 정체는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조립에 필요한 대형 장비였습니다.

 

 강철로 제작된 이 장비의 높이는 23m, 무게만 900t에 달합니다. 하지만 크고 무겁기만 하다면 굳이 한국에 제작을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나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장치의 조립정밀도는 1mm 이내입니다. 다시 말해 몸을 세우면 아파트 8~9층 크기의 트랜스포머 로봇이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는 바늘을 잡을 수 있는 정밀도라고 보면 됩니다.

 

 ITER 섹터 부조립장치, 일명 SSAT(Sector Sub-Assembly Tool)라고 불리는 이 장비는 ITER 장치의 핵심 부품인 진공용기와 열차폐체 및 초전도 코일 등을 동시에 조립하는 데 필요한 구조물입니다. 현재 ITER 제작에 동원되는 장비 가운데 가장 크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ITER는 이 장비가 완성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SSAT의 진공용기 섹터 조립 개념도.

무게 900t에 조립정밀도는 1mm 이내로 국가핵융합연구소와 국내 기업이 제작했다. <사진 출처=ITER> 

 

 

◇ 핵융합의 초정밀 세계, 불가능을 가능으로

 

 ITER가 이처럼 정밀한 핵심 대형 장비를 한국에 맡긴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국형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를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초고온, 초저온, 초전도, 초진공 등 글자마다 ‘초(Super 혹은 Ultra)’가 붙는 극한 환경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는 ‘초정밀’의 세계를 구현한 것입니다.

 

 물론 초정밀은 어감에서도 알 수 있듯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온에서, 혹은 일반적인 소재로 만든 기계라면 현재의 기술로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초고온이나 초전도, 초저온, 초고진공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정밀함을 구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한 영역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핵융합에 필요한 초정밀의 세계입니다.

 

☞초고진공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35
☞초전도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24
☞극저온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48

 

 

 

KSTAR 초전도 자석

 

 

 한국의 핵융합 연구장치 KSTAR에는 약 300t의 초전도 자석이 들어 있습니다. 초전도 자석은 태양과 같은 상태인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둘 수 있는 강력한 자기장을 만드는 역할로 핵융합 장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입니다. KSTAR에 사용된 초전도 자석은 국가핵융합연구소가 국내 업체와 힘을 합쳐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KSTAR에 사용한 초전도자석은 사실 나이오븀-주석(Nb3Sn) 합금으로 만들어진 0.78mm의 굵기의 초전도 선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 한 올에 불과한 굵기이지만, 이 선재 한 가닥에는 머리카락의 50분의 1 정도로 가는 직경 수 마이크로미터의 초전도심(필라멘트) 3,000 가닥 이상이 들어있습니다. KSTAR에 사용된 초전도심을 한 줄로 나열하면 지구둘레(약 4만km)를 900회 이상 감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정밀한 공정을 필요로 하는 초전도 자석 제작 기술은 ‘초전도핵융합장치의 꽃’으로 불리는 중요 핵융합 기술입니다.

 

 이러한 정밀함은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고 가두는 공간인 진공용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주와 같은 초고진공 상태를 제공하는 진공용기 역시 초정밀 가공 공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도우넛 모양의 진공 용기는 세 개의 섹터로 나누어 제작되었는데요. 섹터 1과 섹터 2를 먼저 용접한 뒤(337.5°) 나머지 섹터 3(22.5°)은 TF 자석 조립이 끝난 후 최종적으로 붙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완벽한 진공을 구현해야하는 진공용기는 수많은 공학적 요구사항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야 하는 만큼 설계에만 무려 3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2002년 제작에 들어가 14개월 만에 저온 용기 베이스가, 그리고 2년 만에 진공 용기가 부분품으로 납품되었습니다. 이러한 진공 용기와 저온 용기는 국내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크기와 정밀도의 구조물이었습니다. 지름 9m의 저온 용기 베이스에 세 조각을 용접한 가공오차는 수 밀리미터(mm)에 불과하죠. 

 

KSTAR 진공 용기 제작 당시 모습

 

 

◇ 통제불능·자유분방 ‘반항아’ 플라즈마를 길들여라!

 

 이러한 핵융합 장치의 특징 외에도 플라즈마를 발생시키고 가두는 실험 자체도 초정밀의 영역입니다.

 

 핵융합 장치에서 만들어지는 초고온의 플라즈마는 얌전한 ‘녀석’이 아닙니다. 강력한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핵융합장치 진공용기 내부에 가둔다 해도 그 자리에 얌전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데요. 진공용기 벽에 닿지 않게 중심 부분에 가두어 놓은 초고온 플라즈마는 내부의 높은 온도와 밀도에 저항하며 원래의 열평형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죠.

 

 

 

실시간 플라즈마 형상 제어 시뮬레이션 결과와 플라즈마 영상

 

 이런 불안정성은 플라즈마의 성능을 떨어뜨리고, 심하면 플라즈마 상태를 붕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성질을 잘 파악해 계속 제자리를 잡아주면서 도망가지 않는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즈마 입자가 자기장에 있을 때 어떻게 운동하는지 파악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결국, 플라즈마를 다루는 것 자체가 초정밀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 ‘측정’ 아니라 ‘진단’이 필요한 초정밀의 세계

 

 이렇게 플라즈마 성질을 연구해 도망가지 않게 잘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바로 플라즈마 진단 기술입니다. 보통 측정(measurment)이라고 하는데 유독 의학용어인 ‘진단(diagnostic)’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플라즈마가 온도나 밀도와 같은 몇 개의 수치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각도로 분석해야 실체를 알 수 있는 복잡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가두기도 어렵지만, 자기장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플라즈마를 진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온도가 매우 높아 진단장치를 넣은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플라즈마라는 ‘반항아’의 성질입니다. 온도가 낮은 경계 부분이 아니라 플라즈마 내부의 구조와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이를 위해서는 온갖 초정밀 기술과 방법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내부와 플라즈마 발생 상상도. <사진 출처=ITER>

 

 

 플라즈마의 전자 밀도는 간섭계라는 장치로 측정합니다. 이 장치는 플라즈마를 통과한 전자기파의 위상 변화를 측정하여 전자 밀도를 계산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100m를 이동하는 빛의 경로 길이 변화가 1μm(마이크로미터) 이하 수준이 되도록 유지해야 합니다. 중력파를 측정하는 간섭계의 정밀도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진공 펌프 등 각종 장치와 플라즈마 자체의 힘으로 흔들리는 토카막 환경에서 이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플라즈마의 전자 온도는 ECEI라는 장치로 측정합니다. 수억℃에 달하는 플라즈마의 온도를 측정하는 진단장치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표준 열원이 있어야 하는데, 일정한 온도를 내는 표준 열원의 온도는 수백℃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수억℃를 측정하는 진단장치를 100만분의 1인 수백℃ 수준에서 바로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핵융합 플라즈마를 측정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장치로는 톰슨 산란레이저 광학계도 있습니다. 이 장치는 플라즈마 안으로 입사된 레이저의 광자가 전자에 의해 산란하는 현상을 이용해 플라즈마의 밀도와 온도를 측정하는데요. 산란 확률이 극히 낮아서 일반적인 핵융합 플라즈마에서 1cm를 진행할 때 산란이 일어날 확률은 100억 개 중 하나 꼴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출력 레이저의 에너지를 수 나노초의 짧은 시간 동안 몰아서 방출하는 방법으로 산란 빔의 특성을 측정합니다.

 

핵융합 플라즈마의 물리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플라즈마의 물성을 단순히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물성이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특성 역시 측정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진단 장치들을 요동진단이라고 하는데, 보통 수 kHz~수백 kHz까지의 요동 현상을 측정해야 하고요. 이를 위해 요동 진단장치는 초당 100만 번 이상의 측정을 수행하게 됩니다. 2차원 영상진단을 수행하는 ECEI 장치 역시 이러한 요동 진단장치 중 하나입니다. 

 

 

 

KSTAR 진공용기 내부 모습

  

 

 입자나 전자 단위의 물질을 진단·제어하는 것부터 이를 바탕으로 ‘인공태양’을 구현하기 위해 거대한 장치를 작동오차 1mm 이내로 움직이는 것 역시 초정밀의 세계입니다. 거대 연구시설로 알려져 있는 핵융합장치의 내면에는 이렇게 정밀한 기술들이 숨겨져 있다니, 다시 한번 핵융합 연구에 필요한 극한의 기술 난이도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KSTAR는 ‘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의 약자입니다. 글자 그대로 최첨단 핵융합 연구를 위해 만든 초전도 토카막이라는 의미입니다. 핵융합 반응으로 스스로 빛나는 별처럼(Star) 한국이 전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핵융합 장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초고온과 초전도, 초저온 등의 극한 조건을 만드는 초정밀의 기술이 결합한 그야말로 ‘Super Star’가 바로 KSTA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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