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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태양보다 뜨거운 초고온의 세계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70

 100,000,000(1억)℃. 핵융합에서 자주 등장하는 온도입니다. 동그라미가 저렇게 많이 붙었으니 ‘상당히 뜨겁겠구나’ 짐작할 뿐, 사실 어느 정도 뜨거운지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일상에서는 우리가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온도니까요.

 

 1억℃의 온도로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지만, 세상을 바꿀 1억℃. 그 초고온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방화복이 없다고 불안해하지는 마세요. 실제로 들어가 보는 것은 아니니까요. 설사 방화복이 있더라도 절대 들어갈 수 없고요.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정도의 온도에 견딜 수 있는 물질은 세상에 없답니다.    

 

 초고온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필수 코스가 있습니다. 바로 온도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매일 온도와 접하며 생활합니다. “오늘은 -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외출할 때는 두툼한 겉옷이 필요합니다”라는 일기예보나 “갑자기 열이 올라서 재봤더니 38℃가 넘더라”고 이야기할 때의 그 온도입니다. 온도는 차고 더운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온도는 차고 더운 정도를 나타낸 수치지만, 복잡한 과학의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 신기하고 오묘한 온도의 세계

 

 하지만 과학의 세상이 늘 그렇듯 온도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의 표면 온도는 6,000℃에 달합니다. 형광등 안의 가스도 최대 5,000~6,000℃입니다. 그런데 왜 형광등이 녹지 않을까요? 그것은 밀도 때문입니다. 형광등 가스의 밀도는 대기의 1,000분의 4 정도에 불과합니다.

 

 왜 밀도가 낮다고 녹지 않느냐고요? 여기에 온도의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온도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의 열운동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다시 말해 온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입자의 열운동이 활발하다는 것이고, 온도가 낮으면 열운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태양 표면에 존재하는 많은 입자들의(대기 밀도의 약 1/4 정도) 평균 속도가 6,000℃에 해당하는 값을 가지고 있어 뭐든 닿기만 하면 그 많은 입자가 충돌하여 순식간에 사라질 만큼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온도란 의미입니다.

 

 온도의 하한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물체의 열운동이 0에 가까워지면 물질의 온도도 가장 낮은 한계온도에 도달하게 됩니다. 절대온도 0K(캘빈)로 –273°C에 해당하는데요. 온도가 내려갈수록 기체의 부피도 줄어드는데 이상기체의 경우 절대온도에 도달하면 부피도 0이 됩니다. 기체의 부피가 0이 된다는 것은 기체가 없어진다는 건데 실제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기체는 절대온도 이전에 이미 액화됩니다.

 

 그렇다면 온도의 상한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없습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나 원자의 열운동도 활발해집니다. 분자의 열운동이 활발해져서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의 접합력을 이기게 되면 분자는 각 원자로 분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해 된 원자의 열운동이 활발해져서 원자를 이루는 전자들의 접합력을 이길 수 있으면 전자들이 떨어져 나가 양의 전하를 가진 이온 즉, 원자핵(+)과 음의 전하를 가진 전자(-)들이 분리된 상태, 곧 플라즈마 상태가 됩니다.

 

 온도가 낮다, 높다는 상대적인 의미입니다. 상한으로 가면 특히 그렇습니다. 한계가 없기 때문에 몇 ℃ 이상이 되면 고온, 초고온이라고 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거죠. 다만 종전에는 플라즈마가 생성되기 시작하는 1만℃ 정도를 초고온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핵융합 연구가 급진전해 수 천만℃의 세계를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1억℃ 부근의 온도를 초고온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용광로의 내부 온도는 1,600℃에 달한다.

 


◇ 로켓 3,000℃, 아크용접 온도 4,000℃

 

 이제 초고온의 세계로 한 단계씩 다가서 볼까요? 혹시 라면 좋아하시나요? 라면이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대표적으로는 조리가 간단하다는 것도 라면의 인기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끓는 물에 면과 수프를 넣기만 하면 되니까요. 라면을 먹기 위해서는 물이 끓는 100℃의 온도면 충분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100℃는 매우 높은 온도랍니다. 끓는 물에 닿기만 해도 인체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으니까요,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정수기의 온수는 85~90℃ 정도입니다. 95℃ 이상으로 올라가면 정수기가 과열되어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사우나의 온탕도 50℃에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40℃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100℃가 얼마나 뜨거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체에서 쓰이는 온도를 생각하면 100℃는 상대적으로 ‘저온’에 해당합니다. 이 온도로는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요. 뜨거운 세계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용광로의 내부 온도는 1,600℃입니다. 철의 녹는점이 1,500℃ 정도이기 때문인데요. 상대적으로 녹는점이 낮다는 알루미늄도 660℃에 달합니다. 금과 구리는 1,000℃ 정도입니다. 기본적으로 1,000℃가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녹이는 곳이 바로 용광로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2’를 보면 용광로의 위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데요. 액체금속(Liquid metal)으로 만들어진 미래 로봇 T-1000이 등장합니다. 이 로봇은 온몸이 분해될 정도의 강한 충격이나 몸을 녹일 정도의 화염에도 원상복귀 되는 무시무시한 로봇입니다. 하지만 결국 용광로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금속이라도 액체로 녹여버리죠.

 


우주로켓이 발사할 때 온도는 3,000℃가 넘는다. 사진은 미국 NASA의 우주왕복선 발사 장면.

 


◇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불꽃의 세계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불꽃의 세계’가 있습니다. 바로 우주 로켓엔진입니다. 지난 2013년 발사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Ⅰ)는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1단,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 로켓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단 로켓엔진은 고온·고압의 연소 가스를 배출할 때 생기는 힘으로 나로호를 지상 200km까지 단숨에 밀어 올립니다. 1단 로켓에서 케로신(고도로 정제된 등유)과 액체산소(산화제)를 섞은 추진제가 연소할 때 온도는 무려 3,000℃에 달합니다. 용광로 내부 온도의 2배, 태양 표면의 절반에 가까운 아주 높은 온도지요. 

 

 우주 로켓만큼은 아니지만, 불꽃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용접입니다. 기술과 소재의 발전으로 용접 온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요. 철공소에서 금속과 금속을 붙이는 전통적인 용접 온도는 450℃ 안팎입니다.

 

 하지만 금속이나 탄소 단자를 접촉해 이때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는 아크 용접 온도는 무려 3,000(금속 아크)~4,000℃(탄소 아크)에 달합니다. 또 최근 첨단 제품의 정밀·미세 가공에 많이 쓰이는 레이저 용접이나 플라즈마 용접의 경우 1만℃를 훌쩍 넘어갑니다.

 


하와이 킬라우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
 

 

◇ 1,500만℃가 아니라 왜 1억℃일까?

 

 이처럼 용광로나 용접이 많이 쓰이는 산업계, 우주로켓과 같은 과학기술계도 수 천~수 만℃의 ‘뜨거운 세계’를 인공적으로 구현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세계는 역시 자연계에 존재합니다. 화산에서 용암으로 분출되기 전 마그마는 1,300~1650℃에 불과하지만, 지구의 중심 온도는 6,600℃에 달합니다. 이 역시 태양에 비하면 촛불 정도의 열기에 불과합니다. 태양은 표면 온도만 6,000℃에 달하고 중심온도는 무려 1,500만℃에 달하는 그야말로 초고온의 세계입니다.

 

 태양 에너지는 모든 지구 생명체의 근원입니다. 지난 50억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50억 년 이상 에너지를 공급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태양 에너지의 근원은 중심에서 일어나는 수소 원자핵의 핵융합 반응 때문이고요. 또 그런 수소 핵융합 반응을 끊임없이 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태양 내부가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양의 원리를 이용해 지상에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고, 이러한 핵융합 반응을 통해 방출된 에너지를 이용해 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만들자는 것이 핵융합 발전의 기본적인 구상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1,500만℃가 아니라 1억℃일까요?

 

 물론 1,000만~3000만℃에서도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태양의 중심부는 지구 대기에 비해 밀도가 약 12배 이상 높을 뿐만 아니라 플라즈마를 가둘 수 있는 중력도 지구에 비해 훨씬 큽니다. 그렇게 때문에 태양에서는 그 정도 온도에서도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확률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플라즈마를 가두는 방법으로 강한 자기장을 사용하는데 플라즈마의 밀도를 대기의 수 십만 분의 일 수준으로 밖에 유지할 수 없어 플라즈마 온도를 더 올려야만 핵융합 반응의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억℃ 이상의 높은 온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2008년 6월 첫 번째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한 KSTAR.

 


◇ 1억℃를 가두고 온도를 더 높이려면?

 

 이렇게 태양보다 뜨거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통해 핵융합 반응을 지구에서 만들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연료가 있어야겠죠? 핵융합 연료로는 중수소(양성자 1개+중성자 1개+전자 1개)와 삼중수소(양성자 1개+중성자 2개+전자 1개)가 사용됩니다. 주로 쓰이는 연료는 중수소입니다. 가장 낮은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바닷물에서 거의 무한대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중수소는 방사성 물질이라 실험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초고온의 플라즈마 상태가 필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1억℃ 이상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전기장을 걸어서 올릴 수 있는 온도는 3,000만℃ 정도입니다. 그래서 온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가열장치를 사용하는데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깥에서 고에너지로 가속된 중성입자빔을 계속 쏴주는 방법입니다.

 

 찬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또 하나는 외부에서 전자기파를 쏴줘서 플라즈마 상태의 수소 이온과 전자를 계속 진동시켜주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전자레인지가 전자기파로 음식 내부의 물 분자를 진동시키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중국은 2016년 2월 토카막장치 EAST를 통해 4,999만℃ 온도에서 102초 동안 초고온 플라즈마를 발생시켰다고 발표했다. <사진출처=www.news.cn>


  끝으로 이러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고 유지할 수 있는 핵융합 장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개발한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인 KSTAR가 이런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만들고 가두는 역할을 합니다. KSTAR는 최종적으로 플라즈마 온도를 3억℃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인 목표는 1억℃인데 KSTAR는 현재 7,000만℃까지 구현했습니다. KSTAR는 1억도 이상으로 플라즈마 온도를 높일 수 있도록 ‘뜨거운 물’ 붓는 것에 해당하는 ‘중성입자빔 가열장치’나, ‘전자레인지’처럼 고출력의 전자기파를 쏴줄 수 있는 가열장치를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 3억℃, 10억℃의 세계를 향해 달린다!

 

 이렇게 태양처럼 핵융합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만들고, 가두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종 ‘초(超)과학’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높은 온도의 플라즈마를 가둘 수 있는 용기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즈마를 띄우는 방법을 고안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KSTAR와 같은 자기밀폐 핵융합장치인 ‘토카막’입니다. 그동안 살펴봤던 초전도, 초저온, 초진공, 초정밀의 기술이 모두 어우러져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구현하게 되는 거죠.
            
 ☞초전도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24
 ☞초저온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48
 ☞초진공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35
 ☞초정밀의 세계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64

 

 끝으로 또 하나 궁금증이 생깁니다. 도대체 1,000만℃, 혹은 1억℃의 온도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강력한 소재로 만든 온도계라도 닿는 즉시 녹아버릴 텐데요. 이렇게 초고온 상태의 온도를 측정할 때는 빛을 사용합니다. 플라즈마에 레이저를 쏘면 원자핵 등과 충돌하여 산란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산란 각도가 플라즈마의 온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얼마나 산란했는지를 분석하여 온도를 측정합니다.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5~36.9℃입니다. 여기서 1~2℃만 올라가도 고열과 두통에 시달립니다. 초고온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1,000만℃에서 3,000만℃, 7,000만℃, 1억℃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진통(기술+비용)이 따릅니다. 이러한 진통을 극복하고 초고온의 한계를 하나씩 뛰어넘는 것이 바로 핵융합에너지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억℃는 물론 10억℃의 ‘초고온’을 뛰어넘는 ‘초초고온’의 세계가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핵융합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기술’이라 부를 만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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