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핵융합

  • Fusion Story
  • 핵융합
핵융합의 다른 글

201801.25

가속과 충돌의 교차로에는 마법이 존재한다 - 대한민국 거대과학의 쌍두마차, 핵융합과 가속기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774

 빅 사이언스(Big Science) 즉 ‘거대과학’은 핵융합, 우주개발, 가속기처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인류의 가능성을 넓히는 연구 분야입니다. 대규모 자본과 인력, 그리고 초대형 연구시설의 투입을 특징으로 하고 있지요. 이런 까닭에 거대과학은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거대과학 프로젝트인 초전도핵융합장치 ‘KSTAR’의 국제적인 성공을 거울삼아 또 다른 거대과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이 그 주인공입니다. 2021년 모습을 드러낼 95만2000㎡, 축구장 133개 넓이의 이 거대과학 시설은 순우리말 라온(즐거운)이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기초과학 강국의 즐거운 미래로 이끄는 이웃사촌 ‘KSTAR’와 ‘라온(RAON)’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러고 보니 두 장치 모두 우주 탄생과 기원이 맞닿아 있네요.

 

 

빅뱅에서 풀어가는 세상의 실마리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역사. <사진출처=NASA>


 우주의 근본, 세상의 처음에 대한 갈망은 아주 역사가 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세 연금술사를 거쳐 근대 화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물질의 기원을 찾는 연구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입자물리학에 이르러 인류는 마침내 ‘핵융합’이란 진실의 문과 마주 서게 됩니다.

 

 현대 입자물리학은 137억 년 전 태초의 우주가 소립자(素粒子)의 세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자연계의 기본입자(elementary particle)들입니다.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밝히고 있는 표준모형에 따르면, 초창기 우주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12개의 기본입자와 이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 힉스가 있었습니다.

 

 빅뱅과 함께 쏟아져 나온 이들은 우주가 초스피드로 팽창하는 사이 빠른 속도로 충돌하고 결합하며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습니다. 대폭발로부터 3분 정도가 흘렀을 즈음 주기율표의 첫 번째 원소가 탄생합니다. 하나의 양성자와 전자로 이뤄진 원시 수소이지요. 추후 이들은 주변의 수소와 힘을 합쳐 중수소(deuterium, D)와 삼중수소(tritium, T)로 진화합니다. 더 큰 질량을 가진 동위원소들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연쇄반응 속에 두 번째 원소 헬륨을 잉태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핵융합의 과정입니다.

 

 우주를 만들고 지탱해온 에너지원이 핵융합이란 사실을 알게 된 20세기 초의 과학자들은 지구상에서도 인공적으로 핵융합을 일으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KSTAR와 같은 ‘핵융합장치’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핵융합이란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다른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과학자들이 있었는데요. 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붕소, 탄소, 질소, 산소, 별 그리고 생명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길고 복잡한 우주 생태계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움직임입니다. 과학자들의 이런 노력에 크게 공헌한 장치가 바로 ‘가속기(accelerator)’였습니다.

 

 

깨트리는 가속기, 합치는 핵융합

 

둘레길이 27km의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 LHC. 2012년 힉스입자를 발견했다. <사진출처=CERN>


 빅뱅을 연결고리로 태어난 핵융합장치와 가속기는 고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고 충돌시키는 원리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얻고자 하는 반응은 차이가 있습니다. 가속기는 입자를 깨려고 하고, 핵융합장치는 합치려 합니다.

 

 핵융합은 수소나 수소 동위원소의 원자핵들을 합쳐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것입니다. 태양에너지의 원리이기도 한 핵융합 과정에서 줄어드는 질량만큼 생기는 막대한 에너지가 핵융합 연구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지요. 하지만 원자핵들은 전기적 성질 때문에 같은 극의 자석처럼 밀어내는 힘이 강합니다. 핵융합장치는 이런 원자핵 간의 반발력을 이겨내고 융합할 수 있도록 하는 초고온의 플라즈마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가속기는 현미경 또는 레이더 같은 일종의 관측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작은 세포를 보는 것은 대상물과 충돌해 반사되는 빛을 시신경이 감지하는 것입니다. 레이더라면 표적과 충돌해서 되돌아오는 전자기파로 그 크기와 위치를 식별합니다. 고래와 박쥐는 초음파가 충돌의 수단이 되겠지요.

 

 가속기는 입자의 충돌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관측합니다. 전자와 양성자 같은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다른 물질을 때리면, 과녁이 된 물질은 엄청난 충돌 에너지 때문에 구성인자들을 묶고 있던 힘이 붕괴됩니다. 최소단위의 원자를 더 잘게 부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쪼개지는 입자들의 에너지와 운동량, 질량, 전하 등을 가속기의 눈에 해당하는 입자검출기가 측정해 새로운 입자 탄생의 가능성을 탐지합니다.

 

 

사라진 원소를 찾아서

 

세계 최초의 원형 입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 <사진출처=Lawrence Berkeley Lab>


 핵융합 연구는 19세기 후반 플라즈마 연구로 동이 튼 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현실적인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어 아서 에딩턴, 베테, 조지 가모프 등의 유명 물리학자들을 통해 우주 에너지의 거대한 비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1934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연구진이 마침내 사상 최초의 인공핵융합 반응에 성공하지요.

 

 20세기 초 물리학의 대도약은 가속기의 탄생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925년 미국 물리학자 어네스트 로렌스(Ernest Orlando Lawrence, 1901~1958)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원형 입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은 지름 약 12cm의 작은 크기 때문에 ‘양성자 회전목마’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는데요. 연구실 책상에 올려진 이 앙증맞은 장치는 곧 세계 최초의 거대과학 시설로 무섭게 덩치를 키워갔습니다.

 

 1931년 본격적인 가속기 연구를 위해 세워진 미국 최초의 국립연구소 로렌스버클리랩은 그 자체가 거대한 과학기술 종합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자를 가느다란 빔의 형태로 광속 가까이 가속하려면 수십 톤의 강력한 전자석과 고주파발진기, 전력공급원 같은 대형장치를 비롯해 전기, 무선, 진공, 재료, 기계공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당대 최고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거대 가속기의 등장은 특히 자연계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기본입자와 원소들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1937년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며 비워둔 43번 원자 테트네튬이 발견된 이래 이론으로만 존재를 예측했던 미지의 원소들이 속속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주기율표의 118개 원소 중 26종이 입자가속기를 통해 새로 발견됐습니다.

 

 초창기 우주의 탄생을 설명해온 표준모형도 가속기를 통해 완성됩니다. 1979년 미국 페르미랩의 원형가속기 테바트론이 표준모형의 기본입자 중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았던 톱쿼크를 찾아냈습니다. 이어 201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가속기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가 이들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입자 힉스를 찾아내며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듭니다.

 

 

기초과학 발전부터 혁신산업 성장까지

 


한국의 인공태양 KSTAR의 진공용기 내부 모습


 핵융합장치나 입자가속기 같은 거대과학은 비단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연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과학기술과 산업적 응용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을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로 이끄는 결정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KSTAR는 국내의 핵융합 연구 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였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장치기반 시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 역시 1g의 가격이 수백~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희귀 동위원소를 생산하거나 신물질, 신소재 개발 등 기초과학과 혁신산업 발전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거대과학 시설입니다.

 

 기초과학과 국가경제 모두에서의 효용성은 한국과 함께 핵융합 연구의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이 대형 가속기 건설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거운 원소를 이온화시켜 가속하는 중이온가속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자번호 120번대 이상의 원소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관심이 더욱 큰 분야입니다. 중이온가속기를 통해 인공적으로 생성하거나 분리할 수 있는 희귀 동위원소는 이론상 3,000~6,000개가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4년 완공한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시작으로 경주 양성자가속기, 부산 중입자가속기 등 중소형 가속기를 건설하고 운영하며 기초과학 강국의 청사진을 그려왔습니다. 현재 구축 중인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은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대형 중이온가속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유럽연합과 프랑스, 캐나다, 일본, 중국 등 5개국. 여기에 독일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가 2020년대 초반 가동을 목표로 더 크고 강력한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라온(RAON)’은 가장 우수한 사양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원자번호 1번 수소부터 92번 우라늄까지 실질적으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원소를 실험에 이용할 수 있는 200MeV/u의 가속에너지와 400kW급 가속출력이 자랑거리입니다. 또한 ‘KSTAR’가 세계 최초의 신소재 초전도 토카막으로 핵융합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동위원소 생성기술을 시도하고 있어 더욱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희귀동위원소의 생성방식은 크게 저에너지 희귀동위원소 발생장치인 아이솔 방식(ISOL System, Isotope Separation On-line)과 고에너지 희귀동위원소 발생장치인 아이에프 방식(IF System, In-flight Fragmentation)으로 나뉩니다. 해외의 가속기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온(RAON)’은 세계 최초로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처음 만들어진 동위원소를 재차 높은 에너지로 다시 가속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희귀한 원소의 생성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지요.

 

 

KSTAR와 라온의 선순환 생태계

 

중이온가속기의 초전도가속관<사진출처=RISP>

 

 대한민국 거대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KSTAR’와 ‘라온(RAON)’은 사용되는 극한기술에서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KSTAR’가 극저온의 초전도자석과 초고진공 상태로 플라즈마를 장시간 유지하는 것처럼, 라온(RAON) 역시 입자를 보다 쉽고 빠르게 가속하고 충돌시키기 위해 극도의 진공상태가 유지되는 초전도가속관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우주에 가까운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첨단특수소재들이 요구되는 것도 비슷하지요.  

 

 ‘KSTAR’와 ‘라온(RAON)’은 공통의 극한기술을 바탕으로 약 400곳 이상의 국내 기업들이 연계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도 함께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KSTAR’와 포항방사광가속기, 경주양성자가속기 등의 장치구축에 참여하며 쌓은 대형 초전도자석과 진공용기 제작, 냉각장치, 대출력 전원장치, 마이크로파 증폭 장치 개발과 정밀조립 등 첨단의 기술력에 힘입어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핵심장치 국산화는 물론, 세계 최대의 국제협력 프로젝트이자 최첨단 거대과학 기술의 집합체인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사업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대한민국의 기초과학과 혁신산업을 이끌고 있는 ‘KSTAR’와 ‘라온(RAON)’. 이들의 가속과 충돌이 만들어낼 ‘과학기술 강국 코리아’의 더 큰 마법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  좋아요 bg
    7
    좋아요 bg
  •  카카오스토리 공유 bg
    6
    카카오스토리 공유 bg
  •  카카오톡 공유 bg
    3
    카카오톡 공유 bg

댓글 0

정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