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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플라즈마 매력에 빠졌던 대학생, 플라즈마로 반도체 공정 바꾸다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plasma/777

   


NFRI 우수논문상을 받은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 권득철 박사.  

 

 

“운이 좋았습니다.”
 질문은 장황했으나 답은 간결했습니다. 2017년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우수논문상을 받은 권득철 박사(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 융합원천기술연구부 플라즈마기반기술연구팀)의 소감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해당 기술은 지난 2013년 기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고 지금도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 2017년 논문으로 마무리한 거죠. 기술 개념은 권 박사가 학위를 밟던 2006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무려 10여 년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운으로는 불가능하죠. 긴 시간 밤낮없이 연구에 몰입한 소중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권 박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우수논문상을 받은 권 박사를 군산의 NFRI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에서 만나 연구개발 과정과 계획을 들어봤습니다.

 


권득철 박사가 실험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 반도체 공정에서의 플라즈마 

 

 반도체 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크기의 소형화와 대량의 저가 반도체 제조가 필수적입니다. 이에 따라 반도체 분야에서의 플라즈마 의존도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증착(Deposition), 식각(Etching), 애싱(Ashing) 등 플라즈마 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반도체 제조 공정의 30%에 달합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에서 플라즈마를 이용한 제조 공정은 보통 10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나노급 반도체 공정은 초정밀·초순도·초고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즈마를 비롯해 장비 내부의 물질이나 가스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상황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는지 정확한 측정과 해석이 중요하죠.

 

 하지만 플라즈마 장비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Species)들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온도계를 꽂아 온도를 측정할 수도 없고요. 그러면 간단할 텐데 말이죠. 그래서 계산을 통해 가상으로 측정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계산해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장비 내부의 상황을 해석합니다. 이것을 시뮬레이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시뮬레이터라고 하고요. 권 박사가 개발한 기술은 바로 이러한 플라즈마 장비를 해석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입니다. 권 박사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식각은 반도체의 핵심 공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말하자면 구멍을 깊게 파는 공정입니다. 최근 만들어지는 반도체는 10nm 이하의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공정에 사용하는 플라즈마 장비는 상당히 복잡해요. 들어가는 가스도 많고요. 이런 장비에서 내부의 플라즈마가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많고, 공정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고 빠르게 계산해야 합니다. 그것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시뮬레이터를 개발한 것입니다.”

 


실제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고 있는 장비를 설명하고 있는 권득철 박사.

 


◇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코드수정 작업도

 

 개발한 시뮬레이터는 이미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장비에 적용되어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난 2013년부터요. 2017년 말에는 도시바와 계약을 체결해 해외 판매도 본격화할 예정입니다. 첨단기술, 새로운 기술에 가장 민감한 반도체 소자 기업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해외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만큼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은 입증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종전의 기술이나 소프트웨어와는 무엇이 다를까요?

 

 “신속성과 정확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플라즈마를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플라즈마를 자유롭게 흐르는 액체처럼 취급해서 해석하는 유체모델, 알갱이처럼 취급하는 입자모델 방법이 있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것은 유체모델 기반의 시뮬레이터인데요. 계산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또 비교적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실제 공정에서의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고 고품질의 반도체 생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이렇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시뮬레이터를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데만 무려 3년이 걸렸습니다. 연구실에서 기술을 만드는 것과 그 기술을 적용해 상용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사용자가 어떻게 입력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고, 그 결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해야 했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2013년 상용화하기 전까지 막판 2년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힘들게 계산해서 적용하고 시험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정하고 업그레이드하면 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권 박사는 “정말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할 때보다 더 힘든 시기였다”라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주중에는 군산에서 일하고 주말에 대전으로 가는 주말부부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가고 있으면 휴대전화기가 울려요. 그러면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세워놓고 노트북을 켜서 코드수정 작업을 하고 그 자리에서 보내주곤 했습니다. 도착하면 또 제대로 작업했는지 확인하고요. 이때는 하루에 3~4시간 정도 잔 것 같아요. 학위 논문 준비할 때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2년 정도를 보낸 것 같습니다.”

 


개발된 K-0DPLASMA. 빠른 시간에 플라즈마 변수들을 계산할 수 있어서 외부 공정 조건에 대한 주요 변수들의 전반적인 조망이 용이하다.

 

 

◇ 반도체 제조공정의 완성도를 높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시뮬레이터는 ‘K-0DPLASMA(케이-제로디플라즈마)’로 명명되었습니다. 버전 1로 시작해 현재 버전 8까지 개발한 상태입니다. 그만큼 꾸준히 업그레이드했다는 건데요. 실제 2013년 기술 이전 후부터 지금까지 시뮬레이터의 성능을 높이는 데 꾸준히 주력해 왔습니다.

 

 시뮬레이터 단독으로 반도체 제조 장비에 장착된 것이 아니라 ‘K-SPEED(케이-스피드)’로 불리는 반도체 장비 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K-SPEED는 지난 2013년 NFRI의 플라즈마 기술을 바탕으로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와 국내 중소기업인 경원테크를 비롯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북대, 부산대, 충남대 등 산·학·연 연구진이 공동으로 국산화에 성공한 반도체 핵심 제조공정의 소프트웨어인데요. 반도체 공정 중 식각 및 증착 공정을 시뮬레이션해 실제 공정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플라즈마 공정 난제에 도전하다: https://blog.naver.com/nfripr/220976401271

 

 이 반도체 장비 툴은 종전 수입제품 대비 계산시간을 100배 이상 획기적으로 단축해 국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처리 속도뿐 아니라 기존 제품이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단일가스만 이용한 플라즈마를 해석하는 데 반해 K-SPEED는 복합가스의 반응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K-SPEED에서 복합 가스 반응에 대한 장비 해석을 담당하는 것이 ‘K-0DPLASMA’이고, 정확성 높은 플라즈마 데이터베이스(DB)가 탑재되어 있어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DB 연구는 표준(연), 충남대학교, 그리고 전북대학교 연구팀과 오랜 공동 연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권 박사는 설명합니다.

 

 “사실 시뮬레이터에 적용한 알고리즘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400m 이어달리기를 할 때 바통을 예로 들어 보죠. 한 선수가 100m를 달리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전달합니다. 이렇게 4명의 선수가 달린 400m의 전 과정을 분석하려면 처음부터 모든 구간의 정보가 필요하겠죠. 그다음 400m를 달리면 또 그렇게 해야 하고요. 그러면 정확성은 차치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 정보를 효과적으로, 빠른 시간에 처리하느냐가 고민의 출발이었습니다. 답을 얻지 못해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였고요.”

 


개발된 알고리즘의 개념도. 병렬화를 통해 기존 방법에 비해 몇 배 이상 빠른 계산이 가능함.

 

 권 박사가 생각한 것은 한 구간을 달린 선수의 정보를 다른 구간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실상 네 개의 구간을 병렬화하는 데 성공한 거죠. 처음부터 계산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모든 구간의 계산을 한 번에 풀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유레카! 너무 간단해서 권 박사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누구도 사용해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논문(제목: A parallelization method for time periodic steady station simulation of radio frequency sheath dynamics)으로 정리했고, 해당 분야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SCI급 국제저널((Computer Physics Communication)은 2017년 10월 기꺼이 권 박사의 논문을 수록했습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운이 좋았다”라고 겸손의 답변을 했던 권 박사는 이번에도 공을 다른 연구자들에게 돌렸습니다.

 

 “저 혼자 한 것은 아니고요. 주저자인 저를 포함해 3명이 공동저자로 작성한 논문입니다. 경원테크에도 한 명 있는데 이렇게 함께 연구했던 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논문 발표로까지 이어지기 힘들었을 거예요. 학회에서 발표할 때도 ‘너무 단순해서 부끄럽다’고 말하곤 합니다. 다른 나라 연구자들이 이렇게 격려해주더군요. ‘원래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라고요.”

 


실험실에서 포즈를 취한 권득철 박사.

 


◇ 대학생때 플라즈마 매력에 “더 많은 학생이 관심 갖기를”

 

 대학 때 전기공학을 전공하던 권 박사는 우연히 플라즈마의 세계를 접하고 플라즈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정규 과정에는 없었지만, 교수님 한 분이 방학 때마다 특강 형태로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 처음 접했을 때는 강의 교재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니 세 번째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개념이 잡히더랍니다. 이런 인연으로 학부 3학년 때부터 실험실에 들어가 선배들과 밤새워 코드 개발하며 플라즈마와 씨름했습니다. 유체모델을 기반으로 한 플라즈마 시뮬레이터를 처음 접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플라즈마 해석을 위한 권 박사의 씨름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플라즈마 3차원 해석 소프트웨어 개발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5년짜리 지원 과제에 선정되면서 권 박사는 과제 총괄 매니저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장비 해석 프로그램만 별도로 떼어내 조만간 오픈소스로 발표할 계획이며, 현재 그 작업을 한창 진행 중입니다. 웹사이트에도 게시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플라즈마 해석에 달려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권 박사는 끝으로 이러한 노력이 플라즈마의 매력에 빠져드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연구소에 들어와 계약직 신분일 때 처음 상용화 과제 심사를 받으러 갔는데 심사위원 한 분이 실적을 보시더니 그러더군요. 정말 본인이 한 게 맞느냐고. 대학생 때부터 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계속 그 길로 가면 더 우수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더 많은 학생이 플라즈마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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