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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8

[부고] 핵융합계 큰 별이 지다.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word/515

 

 

 

 국내 핵융합 연구의 권위자인 정기형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가 향년 78세로 지난 13일 별세하였습니다.

 

 고인은 1962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부터 2003년까지 34년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핵융합 연구 및 인력양성에 앞장서 온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 분야의 대표적인 권위자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핵융합 실험장치인 SUNT-79(Seoul National University Tokamak-79)는 고인이 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 제자들과 함께 개발한 토카막 장치로, 이 당시 함께 참여했던 제자들이 추후 KSTAR 개발의 주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최근까지도 고인은 한국가속기 및 플라즈마연구협회 물리기술연구소 소장을 맡아 핵융합 관련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가핵융합연구소 10주년을 맞이하여 진행한 정기형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핵융합계의 큰 스승으로서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새겨보겠습니다.

 

 

**

 

 

더 넓은 혜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정기형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임진왜란 때 유성룡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명나라 지원군이조선땅에 왔을 때 조선장수는 명나라 장수가 원하는게 뭔지 몰라 수모를 당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유성룡이 찾아가 지도를 내놓자 그제야 조선에도 사람이 있었군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지도가 있어야 방향을 잡고 군사를 움직일 거 아닙니까? 그것이 기초인데, 4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는 듯해서 아쉽습니다.

 

 물리학에서 본다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측정입니다. 그런데 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들 일본의 미스도요 회사가 만드는 자를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느 날 표준연구소에 가서 우리나라도 자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요. 그래서 자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이 사람 들이 자를 만들어서 나에게 가져왔어요. 그런데 일본제 품과 비교했을 때 15센티미터에서 0.4밀리미터 정도가 틀린거에요. 일상 기온이 여름에는 영상 40 , 겨울에 는 영하 10까지 내려가는데 이때 발생하는 수축과 팽창이 무시할 정도가 되어야 정확한데 그게 안된겁니다. 또 다른 예로 우리나라에서 대포를 만들었는데 미국산을 보고 똑같이 만들었죠. 그런데 막상 사격을 하니까 포열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죠. 금속 열처리가 제대로 안된겁니다. 그런 것이 기초입니다.

 

 핵융합 분야에서 제가 한 일이 있다면 재료나 장치들을 국산화해서 기초를 만든 것뿐입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줄기차게 핵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실험 장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것이 ‘SNUT-79’라는 토카막 장치입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원자공학과에 나오는 연구비가 한 학기당 36만 원이었어요. 1년에 72만 원이었는데. 다른 교수 들은 거의 이론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 연구비를 내가 쓸 수 있었어요. 그것도 많이 부족했는데 어느 날 과학기술처 장관과 진흥국 국장이 우리학교에 들렀어요. 그때 내연구실을 보더니, ‘, 이런 게 기초 아니요? 스폰서가 누구시오?’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스폰서 없이 학생들과 함께 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분이 돌아가서 한 해에 2000만원을 연구비로 주더라고요. 2년 동안 그거 받은 게 종잣돈이 되어서 SNUT-79를 완성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때 우리가 모든 부품들을 일일이 다 만들었어요. 그중에 구리가 아닌 나이오븀-주석(NbSn)’을 가지고 초전도자석을 만들었어요. 나중에 KSTAR에 들어가는 초전도 자석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KSTAR 프로젝트를 위해 국가핵융합개발위원회가 꾸려졌을 당시 한국전력에서 원자력연구소로 연간 1200억원씩 지원하고 있었어요. 위원회에서는 이 돈을 핵융합 연구에 써도 좋을지 답변을 해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한전 부사장이 우리는 핵융합 장치든 핵분열 장치든 상관 하지 않고 전기를 만드는 일이면 다 지원합니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래서 사백 몇십억원인가를 핵융합 쪽으로 나누게 되었죠.

 

 KSTAR 프로젝트는 정근모 장관님이 본격적으로 밀어붙여서 그렇게 된 거죠. 반대한 사람도 많았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걸 할 처지가 못 된다는 거였죠. 원자력연구소에서는 토카막장치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선 구리 코일로 전자석을 만드는 거였고, 정근모 장관님은 그보다는 조금 더 선진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죠. 제 제자들이 양쪽에 다 진출해 있었는데 저는 초전도 자석 쪽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기왕이면 구리 코일 보다는 조금 더 앞선 것을 하자고 했죠.

 

 그래서 이경수 박사가 주축이 돼서 KSTAR를 건설하기로 했는데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 제자들 중에 10여명이 거기 가담을 했어요. 지금은 그 학생들이 전부 다 소장, 부장, 간부가 되었지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연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리학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5명이라면 일본은 50명입니다. 비교가 안돼요. 일본은 자기들보다 뛰어난 사람 앞에서는 무조건 고개를 숙입니다. 우리가 더 커져서 일본이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저도 서울대에서 35년을 근무했지만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교육 목표나 정책방향이 너무 약해요. 선진국은 명확한 순서가 있어요. 미국의 경우에는 큰 연구과제는 30년을 최대로 잡고 그계획을 변동없이 추진해 나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 정책이 바뀔 때마다 당장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찾아서 이것저것 하다가 진전을 못하기 일쑤죠. 일본을 제치고 선진국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과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자면, 지금껏 무척 잘 해왔지만 조금 더 시각을 넓히고 주변에 귀 기울일 것을 부탁합니다. 현재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와 과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관련 분야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초전도 분야도 예전과 다르게 많이 발전했습니다.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안들을 새롭게 연구해야 합니다.

 

 일례로 선진국들은 핵융합의 재료로 삼중수소를 넘어 헬륨-3’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헬륨-3는 방사성 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지구에는 없는 물질인데 엄청난 양이 달에 매장되어 있어서 지구에서 수천 년 쓸 양이라고 합니다. 세계는 누가 먼저 달에 가서 그것을 가져 올 것인지 경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하고 연구실에서 같이 밥해먹으면서 지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전날 밤을 새우고 학교에서 자고 있던 학생들이 많았죠. 퇴근이 빨라야 밤 11시니까 아르바이트는 생각도 못했죠. 방학이 돼도 연구실에 앉아서 연구에 몰두했죠. 일본 기자가 우리 연구소에 방문했을 때 이불과 취사도구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지금도 제 연구소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같이 밤새면서 고생했던 제자들이 지금은 다들 환갑의 나이가 되고 각 분야에서 요직을 맡거나 최고 리더가 되어 있습니다.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간부가 되고 소장이 되면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공무원이 되는 듯해서 안타까울 때가있습니다. 연구는 편하게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각오로 목숨 걸고 하는 것입니다.

 

 ITER의 목표는 번듯한 핵융합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연소가 잘 일어나도록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다 넓은 혜안을 가지고 바라보길 다시 한 번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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