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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한국의 인공태양 KSTAR가 탄생하기까지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kstar/723

한국의 인공태양,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는 우리의 기술력으로 완성한 세계 최고의 핵융합연구장치입니다. 핵융합 상용화를 위하여 연구되는 다양한 장치가 존재하지만, KSTAR는 그 중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도넛 모양 장치인 ‘토카막’ 방식을 채택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 미국, 일본과 같은 타 선진국과 비교해 늦은 시기에 핵융합연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KSTAR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최고의 장치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우수한 연구 성과 덕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KSTAR와 같은 우수한 장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훨씬 이전부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크고 작은 핵융합연구장치를 제작하며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를 성장시켜온 많은 대학 및 연구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소형 토카막 SNUT-79

 

우리나라 최초의 토카막은 대학에서 탄생했습니다. 바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제작한 SUNT-79 장치입니다. Seoul National University Tokamak의 머리글자를 따 완성된 이름에 장치 제작을 시작했던 시기인 1979년도의 79를 붙여 SNUT-79라는 이름이 탄생하였습니다.

 

 

 

 

국내에 첫 토카막 장치가 탄생하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핵융합 연구를 시작했던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와 다르게, 면면히 플라즈마에 대한 연구만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플라즈마에 대해 공부했던 정기형 박사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핵융합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꼭 핵융합 실험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정기형 교수는 당시 서울대를 방문했던 최종완 과학기술처 장관을 설득하여 투자받은 3,000여만 원을 종자돈 삼아 SNUT-79 제작에 착수하였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매우 파격적인 지원을 받은 것이었지만, 여전히 예산, 인력, 재료 공급 등 수많은 난관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장치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해줄 산업체가 없어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와야 했고, 모든 부품들을 일일이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1979년 장치의 개념설계와 공학설계를 마친 이래 1984년도까지 장치 제작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1985년 1차 운전실험을 하여 최초의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SNUT-79는 국내 최초의 토카막이자 최초의 플라즈마 발생 장치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정기형 교수와 함께 SNUT-79 제작에 함께 참여했던 정기형 교수의 제자들은 이후 우리나라의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 개발의 주역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장난감 토카막?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제작한 KT-1

 

SNUT-79가 한창 제작 중이던 무렵 국가 차원의 핵융합 연구도 점차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선진국의 핵융합 기술 동향을 분석하며 핵융합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시작해온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는 1981년 직접 토카막을 제작하기로 하고 설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토카막 제작에 참여했던 연구원들 중에는 대학원 시절 SNUT-79 제작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SNUT-79 제작 당시 제작 여건에 비해 규모를 너무 크게 잡아 어려웠던 경험을 감안하여 작은 토카막 제작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영문명인 KAERI에 토카막(Tokamak)을 붙어 KT-1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장치는 주반경이 27cm, 부반경 5cm로 테이블에 올려놓을 만큼 작은 크기 때문에 토이막(Toy-mak)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1984년 마침내 본체 조립까지 완료된 KT-1은 1986년부터는 실제 플라즈마 발생 실험도 시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KT-1 제작을 통해 처음으로 핵융합로 개발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추진해 본 경험을 쌓게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로 남게 되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만든 첫 교육용 토카막, KAIST-Tokamak

 

SNUT-79, KT-1 제작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핵융합 연구가 태동하던 1980년 초, 미국에서 핵융합 이론을 연구했던 최덕인 박사가 한국과학기술원(이하,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교수로 취임하며 카이스트에서도 핵융합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최덕인 교수는 1998년 미국 텍사스주립대학 핵융합연구센터에서 운영하던 PreTEXT 토카막 장치가 운전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장치를 국내로 들여와 교육용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국내로 들어오게 된 PreTEXT 장치는 몇 년간의 개조 과정을 통해 KAIST-Tokamak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1993년 4월 플라즈마 발생 실험도 성공하였습니다.

 

비록 기존에 활용되던 해외 장치를 바탕으로 개조한 것이었지만 KAIST-Tokamak을 통해 연구원들이 제어 및 진단장치를 개발하게 되고, 플라즈마 운전의 경험을 폭넓게 쌓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핵융합 연구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공태양, KSTAR에게 남겨진 과제

 

이처럼 다양한 연구 장치 개발을 통해 쌓아 온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KSTAR가 건설되었듯이, KSTAR에게도 중요한 역할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7개국이 힘을 합쳐 프랑스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운영을 위한 준비입니다. KSTAR 장치는 전 세계 핵융합연구장치 중 ITER와 가장 유사한 장치로 손꼽히는 만큼, KSTAR는 ITER 장치 가동을 위한 각종 운전 조건의 개념을 선행해보는 가장 적합한 장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공태양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인공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주역이 되는 그 날까지, 수많은 연구진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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