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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한국의 도토리에서 인류의 참나무로. 'KSTAR 캠페인' 10년의 기록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kstar/828

 

“한국형 인공태양 KSTAR 첫 불꽃 밝혔다.”

 

 2008년 7월 15일 오전, 경향 각지의 신문과 방송들은 일제히 KSTAR의 첫 플라즈마 발생 소식을 타전했습니다. 세계금융위기와 국제곡물파동, 잦아진 기상이변 속에 답답한 여름을 보내던 대한민국에 그야말로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날의 뉴스는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사였습니다. 특히 핵융합 선진국들도 시도하지 못한 초전도 토카막을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 한국이 세계 최초로, 그것도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나이오븀-주석(Nb3Sn) 합금 재료로 만들어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했으니 국제사회의 놀라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꼭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8년 첫 플라즈마 발생실험에 성공한 한국의 인공태양은 어느새 열한 번째 불꽃을 밝히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가진 것 없는 추격자였던 대한민국의 위상을 국제 과학계의 선두로 끌어올린 KSTAR의 지난 발자취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2008.7.15. KSTAR 최초 플라즈마 발생 성공 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도박에 가까운 선언 “세계 최초 신소재 초전도 토카막 건설”


 1920년대초 별의 에너지원이 핵융합이란 이론이 제기되면서 촉발된 서구의 핵융합 연구는 1934년 사상 최초의 인공 핵융합반응 실험에 이어 1968년에 이미 토카막 가동에 성공했을 만큼 뿌리가 깊습니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부 대학이 개발한 소형 토카막으로 걸음마 수준의 초보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뒤져도 한참 뒤진 변방의 한국은 승부수가 필요했습니다. 미래의 국운을 결정할 핵융합 분야에서 더이상 다른 나라들을 쫓아가기만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가득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과감한 중간진입 전략을 세웁니다. 1995년 세계 최초의 신소재 초전도 토카막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입니다.

 

 기초과학 강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쳐진 나라가 돌연 대등한 수준을 넘어 한 차원 더 높이 퀀텀점프(Quantum Jump,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핵 주위를 돌던 전자가 도약을 하듯 높은 궤도로 점프하는 물리현상)를 하겠다는 선언은 도박에 가까웠습니다. 국제 핵융합 과학계의 반신반의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초전도자석에 사용된 나이오븀-주석 합금의 단면


 한국은 기존과 다른 신소재 초전도체인 Nb3Sn을 적용한 핵융합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말 그대로 차세대 장치였지요. 이 새로운 초전도 토카막은 국제적으로 논의만 활발했을 뿐 선뜻 누구도 행동에 나설 수 없는 모험이었습니다. 성공한다면 국제핵융실험로인 ITER에 사용될 초전도체를 먼저 적용하는 것이자, 일반 전자석의 전류 저항과 고열 문제를 넘지 못하던 미국·유럽연합·일본의 토카막들을 단숨에 구형으로 만들 만한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핵융합 과학자들은 높은 수준의 중공업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전도자석과 대형 진공용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 전인미답의 길에 나섰습니다. 토카막 핵융합 장치 건설은 설계도 복잡하지만, 실제 제작과정에서는 각각의 단계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에 매 순간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살 떨리는’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했지요. 더구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되는 초전도 토카막이다 보니 참고할 만한 자료도 없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12년 만인 2007년 8월,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KSTAR는 일단 크기부터가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축구장 4분의 1 넓이의 특수시설부지에 아파트 11층 높이로 건설된 주장치실은 단일 실험공간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조립에만 총 5년이 걸린 주장치와 부대설비는 위용이 더 대단했습니다. SF영화에나 나올 법한(후일 실제로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은회색의 반짝거리는 거대장치는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2007년 KSTAR 완공 당시 모습

 


12년 대역사로 완성한 한국형 인공태양


 큰 그릇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본질을 담을 차례. 세계 최고 수준의 핵융합 실험장치를 갖게 된 한국의 과학자들은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놓기 위해 연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가져보지 못한 초전도 토카막의 첫 번째 불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10개월 뒤인 2008년 5월, 또 하나의 한국발 낭보가 세계의 신문지면을 장식했습니다. KSTAR 연구진이 초전도 핵융합장치 성공적 운전을 위한 가장 큰 난관이었던 극저온 냉각 시운전에 단 한번만에 성공한 것입니다. 극저온 냉각 시운전은 KSTAR에 장착된 300톤 규모의 초전도자석을 임계온도인 –268℃ 이하로 냉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초전도 상태는 장시간 강한 자기장을 유지해야 하는 핵융합장치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따르는 저항, 온도상승, 그로 인한 전력손실의 문제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냉각이 재료와 부품들을 뒤틀리게 할 수도 있는 상황. KSTAR 연구진은 12년간의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초긴장 속에 4주간에 걸쳐 서서히 온도를 끌어내렸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KSTAR의 극저온 냉각 시운전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성공사례였습니다. 한층 더 커진 자신감으로 무장한 KSTAR 연구진은 이제 최종 성공 여부를 좌우할 마지막 단계에 들어갑니다. 바로 최초 플라즈마 발생실험입니다. KSTAR의 모든 기능이 정확하게 구현되는지를 최종 점검하는 것이지요. 종합시운전을 앞둔 연구원들은 ‘배수진’이란 단어를 되뇌며 사소한 사안 하나까지도 점검하고 또 점검하기를 거듭했다고 전했습니다. 아직도 KSTAR 연구진들은 최초 플라즈마 발생을 준비하며 긴장감에 잠 못 이루던 나날들을 회상하기도 합니다.  

 

2008.6.13. 최초 플라즈마 조건 달성 성공 후 환한 얼굴의 연구자들

 


 드디어 6월 13일 KSTAR는 최초 플라즈마의 조건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플라즈마  KSTAR가 밝힌 최초의 불꽃은 플라즈마 전류 107킬로암페어(kA), 지속시간 210밀리초(ms)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초전도 토카막 장치 중 유일하게 단 한 번 만에 종합시운전에 성공하여 만든 특별한 플라즈마였습니다. 당초 최초플라즈마 기준이었던 플라즈마 전류 100kA, 지속시간 100ms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는 12년간의 대역사 끝에 완성한 KSTAR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걸 확증하는 결과였습니다. 

 

KSTAR 최초 플라즈마의 불꽃

 

언론은 KSTAR의 최초 플라즈마 발생 성공 소식을 앞다투어 다루었다.

 

 


KSTAR,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다


 KSTAR의 최초 플라즈마 발생 실험에는 수많은 성공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2008년 여름의 기적으로 국내 핵융합 연구기반은 물론, 핵융합 연구의 핵심 난제인 장시간 고성능 플라즈마 발생의 토대까지 마련한 한국은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성과를 눈덩이처럼 불리며 단숨에 세계 핵융합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릅니다.

 

 이듬해인 2009년 두 번째 캠페인으로 가동을 본격화한 KSTAR는 또 다시 목표치를 크게 상회하는 결과들을 토해냈습니다. 플라즈마 전류는 300kA, 지속 시간은 2초로 늘어났습니다. 첫 해 대비 3~10배가 넘는 기록입니다. 이와 함께 초전도 핵융합장치의 운전 성능을 가늠할 수 있는 자기장 세기 역시 최초 설계 목표였던 3.5테슬라(지구 자기장의 7만 배)를 넘어 3.6테슬라에서도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플라즈마 연구의 필수 조건인 플랫탑(flattop, 플라즈마 전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을 제어하는 데도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KSTAR가 국제적인 공동연구의 새로운 거점이 되리라는 사실을 예고했습니다.

 

 2010년 가을에 열린 IAEA 주최 국제핵융합컨퍼런스에서 KSTAR는 이미 국제적인 공동연구의 새로운 거점이었습니다. 이해의 컨퍼런스는 실질적으로 한국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핵융합 연구자들의 관심은 이제 막 3번째 캠페인이 진행 중인 새내기 토카막의 실험결과에 쏠려 있었습니다. 

 

 KSTAR는 국제사회의 높아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중수소(D) 핵융합 반응 성공’과 ‘플라즈마 500kA, 지속시간 6초, 중성입자빔 가열장치 첫 가동’의 뛰어난 성과로 화답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성과는 대회 이후 발표된 최종 실험결과에서 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초전도 핵융합장치로서 세계 최초로 ‘H-모드’ 운전을 달성한 것입니다. H-모드는 특정조건 아래서 플라즈마의 성능이 두 배로 향상되는 현상으로 핵융합장치의 우수성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KSTAR의 H-모드 달성은 전 세계 핵융합연구자들에 충격과도 같은 희소식이었다.

 


 이후 매년 실험 난이도를 높이며 핵융합 연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KSTAR는 2011년 국제 핵융합계의 골칫거리였던 ‘핵융합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ELM)’의 발달 전 과정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합니다.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성은 핵융합장치의 열 손실과 내벽 손상을 초래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로 손꼽혀왔습니다. 

 

 이 같은 한 해도 쉬지 않고 연이어 탄생되는 성과는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해외의 토카막들이 진단장치의 한계로 단순히 1차원 현상만 측정할 수 있었던 반면, KSTAR는 2025년까지 내다보는 꾸준한 장치 업그레이드를 통해 ECEI(이차원 전자사이클로트론 방사계), 톰슨 산란레이저 광학계 등 다양한 첨단 진단장치들을 계속해서 장착하였고 결국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이 생성되고 붕괴되는 전 과정을 고해상도의 2차원 영상으로 측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은 성공적인 치료의 전제조건입니다. 세계 최초로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을 진단하는 데 성공한 KSTAR 연구진은 몇 개월 뒤 이를 완벽히 억제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ELM 현상의 제어 방법이 파악되자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시간(H-모드)은 1초에서 5.2초, 다음해에는 일반 전자석 토카막이 마의 벽으로 여기던 10초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17→21→55→70초로 어지러울 만큼 빠른 수직상승을 시작합니다. 

 

KSTAR 1만샷 달성의 순간. 핵융합(연)의 직원들은 한마음으로 1만샷 달성을 축하했다.

 

 


양적 팽창 넘어 과학적 성과의 시대로


 2014년 플라즈마 발생실험 횟수 1만 회를 넘긴 KSTAR는 어느덧 국제 핵융합계의 새내기에서 베테랑 핵융합장치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캠페인 기간이 되면 KSTAR 중앙제어실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실험을 위해 찾은 해외 연구자들로 활기가 가득 넘쳤습니다. 아무도 성공을 자신하지 못했던 KSTAR가 이제 한국을 넘어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수준에 올라선 것입니다.

 

 KSTAR의 이런 가치는 2025년 최초 플라즈마 발생을 목표로 건설공사가 한창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ITER는 장치 완공 후 초기운전단계에서 반드시 구현해야 할 핵심조건들이 있습니다. 플라즈마 성능과 유지시간, 그리고 ELM 현상의 제거라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비로소 목표한 바대로 본격적인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연구가 가능해집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ITER 기준에 최적화된 운전기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왔습니다. 특히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고성능 플라즈마 유지’와 ‘ELM 현상 제어’를 함께 구현하는 게 난제입니다.

 

 KSTAR는 현재 이들 분야에서 선도국의 위치에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ELM 현상을 진단하는 데 성공했던 KSTAR는 2017년 캠페인에서 다시 세계 최초로 ELM 현상을 장시간 제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ITER에서 요구되는 운전 조건 하에서 3~4초대에 머물던 ELM 제어시간을 그 열 배인 34초까지 크게 늘렸습니다. 세계의 핵융합장치들 가운데 가장 먼저 ITER 기본운전모드의 성능수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운전기술을 확보한 것입니다.   
  

KSTAR는 매년 최초, 최고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전 세계 핵융합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비단 핵융합로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운전기술 뿐 만이 아닙니다. KSTAR 연구진은 핵융합로의 안정적 가동을 방해하는 현상들의 원리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ELM 현상의 물리적 이론 모델을 실제로 규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1980년대 독일에서 처음 발견된 ELM 현상은 지난 30여 년 간의 국제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제어는 물론 정확한 관측조차 어려웠습니다. 2017년 연구의 목표를 ‘양적기록 이상의 질적성과’로 잡은 KSTAR 연구진은 ELM 현상의 발생 원리에 대해 다각적인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특히 자기유체역학(MHD)과 난류 연구를 위해 설계된 ECEI 진단 시스템, 기존 핵융합장치의 약 10배 수준인 초전도자석의 정밀도, 세계적으로 유일한 3열 ELM 제어코일 등 KSTAR 고유의 특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ELM 제어 메커니즘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실험로에서 발전소까지…‘포스트 ITER’ 시대를 준비하다


 이미 고성능 플라즈마 발생과 장시간 유지 부문의 독보적인 성과로 ITER의 모델이 되어 온 KSTAR는 이제 보다 장기적인 전망 아래 ITER 이후에 건설될 새로운 핵융합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KSTAR는 현재 11번째 캠페인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느덧 국제 핵융합계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올라선 KSTAR의 중앙제어실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실험을 위해 찾는 해외 연구자들로 북적이게 될 텐데요.  

 

 국가핵융합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올해 증설되는 가열장치를 비롯해 2021년 완료 예정인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세계적으로도 시도된 바 없는 ‘포스트 ITER’ 시대의 진보적이고 안정적인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시나리오를 확보해간다는 계획입니다. 

 

 아무도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속에서 첫발을 뗀 지 10년 만에 한국의 인공태양에서 세계의 인공태양으로 거듭난 KSTAR의 놀라운 성장과정은 어쩔 수 없이 “도토리 한 알 속에 거대한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인디언의 격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다른 10년, KSTAR가 인류 모두에게 더 큰 그늘을 드리우는 늠름한 청년 참나무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건설현장. KSTAR 건설의 경험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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