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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3

플라즈마를 영화처럼 촬영하자 새로운 핵융합이 시작됐다

커뮤니케이션팀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1176

'찬드라세카 상' 수상자 박현거 교수의 연구 인생

“플라즈마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그 안에 들어 있는 물리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세계적 핵융합 석학인 박현거 교수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한 소명입니다. 지난 9월 10일, 아태물리학협회 플라스마 분과는 UNIST 물리학과 교수이자 국가핵융합연구소 고문인 박현거 교수를 찬드라세카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찬드라세카 상은 미국물리학회 멕스웰상, 유럽물리학회 알벤상과 함께 세계 플라스마 물리학계 3대 학술상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긴 장마 뒤 찾아온 청명한 가을 날씨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에 국내외 핵융합계의 축하가 이어졌습니다.

  

‘핵융합 플라즈마의 역동성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없을까?’란 질문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현실로 구체화되었고, 지구의 인공태양이 풀어야 할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였습니다. 한국 나이로 69세, 그는 고희를 앞둔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르는 탐구 열정으로 한국과 미국, 프랑스를 오가며 핵융합 연구역량 향상과 후진양성에 힘쓰는 참 스승입니다. 매주 화요일이면 국가핵융합구소 KSTAR연구센터를 찾아 다양한 현안을 자문하는 박현거 교수를 직접 만났습니다.

 

미소를 짓고 있는 박현거 교수 

 


|핵융합 세계로 향한 도전, ‘젊음’과 ‘열정’이 자산이다

  

“영화를 보듯 플라즈마 속 전자들의 집단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없을까?”

  

박현거 교수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1969년, 서강대학교 물리학도였던 박현거 교수는 당시 소련에서 만든 토카막 장치에서 1,00만℃ 이상의 핵융합 플라즈마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평생을 바쳐 연구할 대상임을 직감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핵융합 연구자의 길을 안내할 스승도, 장치도 없었습니다. 그는 혈혈단신, 미국 남가주대학교를 졸업 후 플라즈마 공부가 가능한 길을 찾아 플라즈마 연구의 중심지인 프린스턴으로 향했습니다. 주변에선 ‘학부라도 마치고 떠나라’며 만류했지만, ‘젊음’과 ‘열정’ 두 가지 든든한 자산이 있기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응용플라즈마물리로 박사학위를 마친 그는 미국 핵융합 연구의 중심지 프린스턴대학 플라즈마물리연구소(PPPL)의 일원이 되어 그 당시 세계 핵융합 연구를 리드하던 핵융합 장치 ‘TFTR’ 팀에서 진단계개발과 수송물리연구에 집중했습니다.

  

“핵융합 물리는 복잡계 물리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분야지요. 플라즈마 역동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정말 많고 복잡합니다. 모든 측정을 대칭화시키면 간단해지지만, 대칭화된 구조에서 비선형물리의 결과를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작은 비대칭성변화가 비선형물리에 따라 움직이는 역동성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구현할 수 없죠. 이러한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검증할 수 있는 초고속 정밀측정이 중요합니다.”

  

박현거 교수는 “핵융합발전의 핵심인 초고온 플라즈마의 효율적 장시간 운전에 성공하려면 먼저 플라즈마 물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동안 경험적 이해를 바탕으로 플라즈마를 어느 정도 장시간 운전하는 데 성공했지만, 더 긴 시간을 운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플라즈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험적 핵융합 연구에 진전이 있고, 다양한 논문이 나왔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플라즈마를 해석하는 연구자들의 의견은 항상 분분하기만 했습니다.”

여느 핵융합연구자들과 달리 진단장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스스로 어떤 정확한 물리량을 측정할 수 있는 진단장치를 만들어 정확한 측정을 바탕으로 이론과 비교 연구하여 플라즈마 역동성의 본질을 찾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실시간으로 플라즈마 역동성을 측정하는 마이크로파 영상장치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연구자들이 똑같은 플라즈마 물리현상을 보고 얘기하는데 마치 아래의 그림처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해석이 맞는지, 틀렸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지요. 2차원 사진처럼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어느 해석이 옳고 그른지 충분한 이해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어요.”

마치 아래의 그림처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연구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2차 영상관측

  

“한마디로 플라즈마 속 전자의 움직임을 보는 카메라입니다. 플라즈마 속의 전자 온도 및 밀도의 섭동을 2차원으로 측정한 선명한 영상이 공개되자 누구나 동일한 현상을 동일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플라즈마 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핵융합로 속에서 벌어지는 플라즈마의 실제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플라즈마 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핵융합로 속에서 벌어지는 플라즈마의 실제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박현거 교수는 2002년 PPPL 재직 시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 내 조력자들과 국제협력을 추진하여 초고속 마이크로파 2차원 영상 카메라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낯선 장치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을까요? 처음부터 장치의 진가를 알아본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박현거 교수는 결국 미국이 아닌 독일 핵융합 장치 텍스토르(TEXTOR)에 2차원 영상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2006년에 플라스마 중심부에서의 “톱니현상”에 관한 정확한 관찰 및 비교연구가 두 편의 논문이 물리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한 호에 실리는 일이 있었고 이후에 참여연구원들의 노력으로 많은 새로운 발견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현거 교수는 한국의 핵융합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07년 말 포항공대로 연구무대를 옮겼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KSTAR를 필두로 핵융합 중간진입 전략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었는데요. 세계 최초 초전도 토카막 핵융합 장치 KSTAR는 박현거 교수가 개발한 영상진단장치와 만나 장치성능과 진단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측정 결과 KSTAR는 세계 어느 토카막 장치보다 잘 지어진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KSTAR에 영상진단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진단장치의 구비도 어려운 상황에서 선진국도 하지 못한 영상 진단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비나 전문인력 등이 부족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시 연구참여자와 학생들의 노력이 쌓여 KSTAR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장치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KSTAR의 우수한 장치 성능은 대칭성이 뛰어난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을 가능하게 했고, 제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고온 플라즈마의 명확한 물리기반을 확립하며 톱니현상에 대한 기존 연구의 논란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핵융합 플라즈마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톱니현상 규명은 그의 대표적 연구성과입니다. 1974년 최초로 톱니현상이 발견되고, 이듬해인 76년에 자기유체역학에 기반을 둔 이론으로 해석을 했지만, 진단이 발달되면서 처음 이론과 괴리가 크다는 관측 때문에 새로운 이론들이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들도 정확한 규명이 되지 않은 채 40여 년이 흘렀습니다. 박현거 교수는 40년 가까이 핵융합계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던 톱니현상을 일괄적으로 명확히 밝힐 수 있었던 것은 KSTAR에서 수행한 정확한 실험결과 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미지 2개를 첨부

KSTAR 영상장치로 찍은 플라즈마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성의 예시: 크기가 다른 두 영상은 두 장치의 확대비의 차이다.

 STAR에 장착된 영상진단장치 ECEI와 ELM 발생 과정의 3차원 분석 결과 

KSTAR 영상장치로 찍은 플라즈마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성의 예시:
크기가 다른 두 영상은 두 장치의 확대비의 차이다.

KSTAR에 장착된 영상진단장치 ECEI와 ELM 발생 과정의 3차원 분석 결과

 

 

“기존 연구자들은 플라즈마가 실린더 형태라 생각하고 해석을 내놓았는데 KSTAR 영상 관측 결과 플라즈마가 실린더 모습일 때도 아닐 때도 있었던 거죠. 즉 기존의 이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입니다. 이론연구자가 자기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미지와 영상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됐습니다.”

 

“처음 이론이 틀렸다는 주장(불안정성의 붕괴속도가 이론보다 턱없이 빠르다는 주장)도 틀리지 않았지요. 다만 어떤 경우가 빠르고 느린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지요. 기존 연구자들은 플라즈마가 실린더 형태라 생각하고 이론 해석을 내놓았는데 KSTAR를 포함한 세계 여러 영상 관측 결과 붕괴 직전의 플라즈마 불안정성이 실린더 모습일 때보다는 아닐 때가 대부분이었거든요. 2차원 영상 없이는 판단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연구자가 자기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미지와 영상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되고 정확한 이론을 정립할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박현거 교수는 KSTAR의 플라즈마 운전 영상을 기반으로 ‘톱니현상’에 대한 이해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요. 이는 핵융합 플라즈마의 자기유체 및 난류현상에 대한 관찰과 해법 마련의 바탕이 됐습니다.


더불어 2011년에는 KSTAR에 설치된 3차원 영상장치를 통해 POSTEC 윤건수 교수가 ‘핵융합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 전 과정을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영상으로 측정했습니다. 당시 KSTAR 연구진과 UNIST와 포스텍 공동 연구팀은 자기장에서 만들어진 난류가 ‘핵융합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성 현상(ELM)’을 억제하는 원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초전도 토카막 형식의 KSTAR는 현존하는 핵융합 장치 중 가장 정교하며 대칭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우수한 장치에서 진행된 실험결과를 영상이라는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하자 새로운 이론과 모델링의 발전이 촉진되었고, KSTAR의 플라즈마 연구역량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였습니다. 2008년 2차원 측정을 시작했던 KSTAR의 영상장치는 이후 3차원 입체 영상 촬영 기능을 추가하여 KSTAR 플라즈마 전 영역에서의 자기유체 현상의 발달 및 붕괴과정을 2, 3차원으로 동시에 관찰하고 있습니다.

 

톱니현상을 주제로 한 그의 연구도 계속 진화하여 2019년 집대성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총 36편의 논문을 게재한 것을 포함해 300 편 이상의 SCI급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KSTAR에는 UNIST와 포스텍 연구진이 함께 개발한 전자온도 영상 진단장치(Electron Cyclotron Emission Image[ECEI])가 구축돼 플라즈마 물리현상을 이해하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KSTAR에는 UNIST와 포스텍 연구진이 함께 개발한 전자온도 영상 진단장치(Electron Cyclotron Emission Image[ECEI])가 구축돼

플라즈마 물리현상을 이해하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40년 핵융합 연구 열정의 비결은? “연구가 재미있다”

 

“PPPL에서 연구를 시작하면서 미완성된 다중채널 간섭계 건설 및 운영에 5년 동안은 매일 같이 하루 18시간을 일했습니다. 아침 9시에 일을 시작하면 밤 12시가 넘어 끝났어요. 그럼 또 자정부터 새벽까지 장치를 손보았죠. 정확한 측정이 완성되면, 에너지 수송문제를 풀 수 있다는 꿈이 있으니 힘든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었습니다.”

 

연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요. 평생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문제에 도전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과 근성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습니다.

 

“연구자로서 행운이 따랐습니다. 모든 것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고, 플라즈마 물리학의 한 부분에서나마 이룰 수 있었던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그의 연구인생 전체가 순조롭기만 했겠습니까? 그는 여전히 새벽 4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쓰며 하루를 엽니다. 한국에서는 UNIST와 국가핵융합연구소를 오가고, 봄, 가을 두 번씩 프랑스 핵융합 장치 WEST에 장착된 관측장치를 점검합니다. 여름, 겨울 방학에는 미국 PPPL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습니다.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의 원천은 “핵융합 자체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난제 해결에 기여했지만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주제가 무궁무진합니다. 때문에 핵융합 세상의 주인공이 될 제자들에게도 딱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재미없는 건 아무리 돈벌이가 잘되어도 오랫동안 할 수는 없다. 네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해라.”

 

그렇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집중을 할 수 없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찾은 연구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은 과학자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입니다.

 

핵융합의 거목 박현거 교수 

 

“과학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결과들이 쌓여야 ‘그때 그게 맞구나’란 걸 알 수 있죠. 현대 물리학은 1800년말 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핵융합 물리는 그보다 한참 뒤인 1970년대에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더구나 핵융합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간혹 돈 많이 들고 안될지도 모르는 일은 안 하는 게 좋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요. 그때 저는 비유를 들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분들은 멀리 가지 말고 눈에 보이는 데 까지만 가시라’고 합니다. 핵융합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유일한 에너지 해결책이니 끝까지 가봐야 하지요. 만약 우리 세대가 못하면 다음 세대가 하고 우리가 못하면, 다른 나라가 하면 되고. 인류는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핵융합의 거목 박현거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KSTAR가 실험하고 관측한 결과를 통해 세계의 사이언스, 물리학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핵융합 물리를 이해하기 위해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박현거 교수의 연구 열정은 후학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의 꿈인 동시에 우리의 꿈인 핵융합 열매 맺기 위해 어떤 도전을 펼쳐갈 것인지 새로운 질문을 찾아 나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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