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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2

“1,000만℃를 넘었다고?” 믿을 수 없었던 핵융합 연구의 역사적 순간!

커뮤니케이션팀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1180

핵융합 연구의 전환점이 된 순간①

 

150년 전 최초의 전기가 지구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인류는 이제 새로운 에너지로 밤하늘을 밝히는 도전에 나섰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태양입니다. 스스로 빛나는 태양처럼 ‘인공태양’을 만들어 지구의 밤하늘과 미래를 밝히겠다는 것인데요. 이처럼 지구에서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한 야심 차고도 거대한 도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플라즈마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던 핵융합 연구의 뒷이야기, 핵융합 연구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 순간을 살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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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의 토카막 T-3(오른쪽)와 온도 측정을 위해 연결된 영국 분광계(왼쪽).
옛 소련의 토카막 T-3(오른쪽)와 온도 측정을 위해 연결된 영국 분광계(왼쪽).

톰슨 산란 현상을 이용해 플라즈마 온도를 측정하려면 분광계가 필요하다. <사진 출처=www.euro-fusion.org>


 

1968년 핵융합에너지 콘퍼런스(FEC). 이 자리에서 옛 소련의 연구진은 믿기 어려운 비밀을 공개합니다. 자신들의 핵융합연구장치인 T-3를 통해 플라즈마 온도를 종전의 10배에 달하는 1,000만℃까지 높이고, 플라즈마 가둠시간도 수십 배 향상시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방 핵융합 과학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거짓말이야!”,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동안 고민했던 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토카막 장치가 전면으로 부상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옛 소련 연구진의 발표는 핵융합 연구가 경쟁에서 협력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죠. 100만℃에서 1,000만℃까지 플라즈마 온도를 높이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반복되는 실패가 있었죠. 손을 잡으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핵융합 연구의 역사를 바꾼 T-3와 토카막, 그리고 그것을 탄생시킨 경쟁과 협력의 막전막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옛 소련의 핵물리학자 이고리 쿠르차토프.
옛 소련의 핵물리학자 이고리 쿠르차토프.

1956년 영국원자력에너지청(UKAEA)을 방문해 핵융합 반응에 대한 강의를 한다. <사진 출처=wikipedia>

 


|경쟁에서 협력으로, 비밀주의의 벽을 허물다

 

미국은 원자폭탄에 이어 1952년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합니다. 원자력이 그렇듯 인류가 핵융합에너지의 가공할 위력을 처음 경험한 것은 살상과 파괴를 위한 무기를 통해서였습니다.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 반응을 이용하는 수소폭탄은 원자폭탄보다 훨씬 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데요. 미국과 치열한 체제경쟁과 무기경쟁에 돌입한 옛 소련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지 1년 뒤인 1953년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합니다. 이로써 인류는 그동안 마주해 본 적 없는 가공할 위협에 내몰리게 됩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상대방 국가는 물론 지구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무시무시한 군비 경쟁, 냉전(冷戰) 시대의 서막이 오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히 핵융합 연구는 각국의 극비 사항으로 분류됩니다. 관련 과학자들은 입을 닫아야 했고, 관련 연구개발은 철저한 관리 속에 비밀리에 진행되었죠. 하지만 핵융합이 너무 어려워서였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너희보다 앞서 있다”는 체제 우위를 자랑하고 싶어서였을까요? 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의 일인데요. 당시 옛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가 영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합니다. 이때 동행한 옛 소련의 핵물리학자 이고리 쿠르차토프가 영국 원자력에너지청(UKAEA)을 방문해 핵융합 반응에 대해 강의를 합니다. 잘 모르고 힘든데 각자 하는 것보다 서로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협력의 가능성이 열리는 ‘사건’이었던 셈인데요. 이 일을 계기로 1958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평화를 위한 원자력 회의’에서 미국과 영국도 핵융합 관련 기밀을 공개하게 됩니다.

 

 

|“핵융합 20세기에는 불가능” 우려가 국제협력 자극

 

상황은 비관적이었습니다. ‘적국(敵國)’에 정보가 흘러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간 연구 성과를 공개하고 공유했지만, 오히려 핵융합에너지를 상용화하는 일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만큼 핵융합이 어렵고 까다로운 분야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미국의 핵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공식 석상에서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20세기 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1955년 ‘제1차 평화를 위한 원자력 회의’ 의장이었던 인도의 핵물리학자 호미 바바의 장밋빛 발언을 3년 만에 뒤집는 우울한 예측이었습니다. 호미 바바는 당시 이렇게 말했었죠. “이 회의에서는(1차 평화를 위한 원자력 회의) 핵분열만 논의하지만, 미래에는 핵융합이 중심이 될 것이며, 20년 안에 핵융합에너지를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인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https://blog.naver.com/nfripr/221796004797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세계 각국의 연구가 벽에 부딪히고,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관적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에 관한 목소리도 동시에 높아집니다. 옛 소련의 핵융합 권위자인 레프 아치모비치가 “핵융합 연구는 당면한 과제가 워낙 커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고요. 각국의 관련 연구소는 상호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6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관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첫 번째 핵융합에너지 학회가 열리면서 핵융합 국제 협력 연구의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협력해야만 핵융합의 난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죠.

 


|T-3, 최초로 플라즈마 1,000만℃ 달성
         
국가별 비밀주의가 다소 완화되고 핵융합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자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핵융합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1968년 옛 소련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린 제3차 FEC. 이곳에서 옛 소련의 연구진은 메가톤급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소련의 핵융합연구장치인 T-3에서 플라즈마 온도를 1,000만℃까지 달성하고, 플라즈마 가둠시간을 수십 배 향상시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종전까지 서방의 연구소에서 달성한 플라즈마 온도는 100만℃ 정도에 그쳤죠. 가둠시간도 밀리초 단위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000만℃의 온도를 달성하고, 가둠시간도 30배 이상 향상시켰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T-3는 이고르 탐과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제안한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된 바로 ‘토카막’ 장치였습니다.

 

☞ 최초의 인공태양 누가 만들었을까?
https://blog.naver.com/nfripr/221223131863

 

사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 소련이 토카막 장치인 T-3를 통해 플라즈마 온도를 1,000만℃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전 세계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의심의 눈길을 보냈죠. 지금이야 1억℃라는 엄청난 온도를 자랑하지만, 당시만 해도 100만℃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이보다 10배나 높은 1,000만℃의 온도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거짓말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유럽의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있는 T-3를 찾아갑니다. 톰슨 스캐터링(Thomson Scattering)이라는 진단장치를 직접 들고 말이죠. 놀랍게도 도넛 모양의 이 장치에서 측정된 온도는 1,000만℃.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 저널에도 이 결과가 실리면서 T-3는 단숨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습니다. 핵융합 연구의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토카막이 혜성처럼 등장해 주류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나라가 토카막 연구에 뛰어들며 관련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게 됩니다. 더 뜨겁게,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플라즈마를 가둘 수 있게 말이죠. 특히 T-3의 성공은 핵융합 연구가 경쟁 일변도에서 국제협력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인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자세히 보기 

  과학자들이 T-3의 온도를 측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사진 출처=www.euro-fusion.org>

 

 

|핵융합 장치 주류로 급부상한 토카막 

 

토카막은 러시아어 ’Toroidalnaya Kamera Magnitnaya Katushka’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인데요. 글자 그대로 토로이드 구조의 주변에 자기 코일을 설치한 장치입니다. 1968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T-3가 최초의 토카막은 아닙니다. 토카막의 개념은 1950년대 초 수소폭탄을 제조할 때 삼중수소를 얻기 위기 사용하는 장치인 MTR(Materials Testing Reactor, 재료시험용원자로)을 개발하면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즈마를 가두는 도넛형 그릇이 유리나 자기 등으로 만들어져 진정한 토카막이라고는 할 수 없었죠. 처음으로 모든 부품을 금속으로 만든 토카막 장치는 1958년 옛 소련이 개발한 T-1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최초의 토카막’ T-1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불순물이 많은 원소를 생성할 뿐만 아니라 X-선을 발생시켜 플라즈마 에너지를 쉽게 잃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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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의 토카막 내부 모습

 

토카막의 가장 큰 장점은 구조가 단순해 제작이 쉽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제작과 유지 보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다만 플라즈마에 흐르는 전류를 장시간 안정적이고 정밀하게 제어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토카막은 ‘H-모드’와 같은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모드를 다양하게 활용해 뛰어난 성능의 플라즈마를 얻을 수 있는 장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핵융합 장치 가운데 가장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방식으로 꼽힙니다. 유럽연합(EU)의 JET를 비롯해 미국의 DIII-D, 독일의 ASDEX-U, 러시아의 T-15, 일본의 JT-60U, 중국의 EAST, 우리나라에서 2007년 완공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 등이 세계 주요 핵융합 장치들은 대부분 토카막 방식이고요.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해 비롯해 국제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역시 토카막 방식의 핵융합로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연대와 협력의 힘

 

냉전 시대에 시작된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한 국제 협력은 2006년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개발 프로젝트가 공식 출범하면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에서는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프로젝트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건설이 한창입니다. ‘21세기 피라미드’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태양의 원리를 이용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간의 핵융합 연구 결과의 산물이자 국경을 넘은 야심 찬 도전입니다. ITER는 지난 7월 장치조립 착수 기념식을 열고 본격적인 장치 조립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에 또 한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ITER까지 이어지는 동안 핵융합 개발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그리고 최적의 과학적 실현 방법을 찾아서. 대부분의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그런 것처럼 초기에는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이 숨어 있었죠. 하지만 핵융합 연구개발에서의 협력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었습니다.

 

ITER는 지난 7월 장치조립 착수 기념식을 열었다. <사진 출처=www.iter.org>
ITER는 지난 7월 장치조립 착수 기념식을 열었다. <사진 출처=www.iter.org>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훨씬 쉽다는 건데, 인류의 미래를 바꿀 거대과학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실제로 인류는 엄청난 돈과 인력, 시간이 필요한 거대 연구개발 프로젝트라면 함께 힘을 모으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체의 신비를 밝히는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그랬고요. 전 세계과학자들이 모여 우주의 기원과 진화 과정, 물질의 구성 등을 밝히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한 ITER 역시 연대와 협력이 없었다면 첫 삽을 뜨지 못했겠죠?. ‘따로 또 같이, 경쟁에서 협력으로!’ 이러한 구호와 패러다임 변화가 현대 과학계의 숙원인 인공태양 구현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언젠가 미래 무한 청정에너지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의 ITER 건설 현장 뒤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www.iter.org>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의 ITER 건설 현장 뒤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www.i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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