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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핵’은 정말 위험한 존재일까?생활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가진 '핵'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826

 “핵무기를 만들어요?” 국가핵융합연구소 방문객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핵융합과 핵분열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하다가도 왜 이렇게 ‘핵’이란 단어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핵무기가 되었을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최근 세계적 이슈였던 북미 간 정상 회담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한반도의 비핵화’였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핵’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는 북한 핵문제에 관한 뉴스를 통해서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핵’은 전쟁과, 무기로 대변되는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는데, 핵은 정말 그렇게 무섭고 위험하기만 한 걸까요? 

 

 

핵융합으로부터 시작된 우주와 생명의 역사 <이미지 출처=미국과학재단>

 

핵 속에 담긴 우주와 생명의 역사

 

 핵(核)은 핵폭탄이나 원자력발전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대기처럼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최소 구성단위이며, 생물의 세포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구조물입니다. 성인의 세포 수가 평균 60조, 또 인체 곳곳에 기생하는 미생물의 수가 100조 개가 넘으니 지금 내 몸 안에만 해도 약 160조 개의 핵이 활동하고 있겠네요. 과일의 딱딱한 씨앗을 가리키는 한자 이름 그대로 우주 모든 만물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 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몸을 이루는 많은 수의 핵이 있음에도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 핵들이 안정적인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핵이 자연적인 상태에서 안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주 공간도 자연적인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우주방사선이 매 순간 지구로 떨어지고 있으며(물론 두툼한 대기층이 대부분을 막아 주지만 지금도 미세한 양에 모든 사람이 노출되어 있으며) 특히 인류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별인 태양에서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핵반응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에서 관찰되는 핵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밝힐 소중한 단서였던 만큼 숱한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중 물리학에서의 핵은 1911년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 1871~1937)가 톰슨의 원자모델을 연구하던 중 원자의 질량 대부분이 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몇 해 뒤인 1919년에는 애스턴이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많은 원소에 동위원소들이 존재함을 확인하며 핵물리학의 급속한 발전을 이끌게 되지요.

 

러더퍼드가 제안한 원자모형에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 디자인

 

 1938년 독일의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은 작은 실험용 원자로에서 중성자를 우라늄에 충돌시키면 연쇄 핵분열을 일으키며 큰 에너지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현대 전기문명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의 서막이 열린 것입니다. 또 원자로에서 나오는 짧은 반감기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산업기술도 인류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1945년 일본에 떨어진 두 발의 원자폭탄이 가공할 만한 핵에너지의 위력을 보여주자 인류는 핵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지요. 핵에 집중되어 있던 질량이 핵반응으로 인해 미세하게나마 줄어드는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법칙에 의해 결손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만큼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변화하는 것을 실증하게 된 것이지요. 핵이 인류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데 쓰여 질지 아니면 가공할 위력으로 파괴하는데 쓰일 지는 결국 그것을 제어할 수 있게 된 인간의 손에 달려 있게 된 셈입니다.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이용되는 ‘핵’

 

 원자력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자연상태에서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의 두 가지 동위원소로 존재합니다. 동위원소란 양성자의 수를 뜻하는 원자번호가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다른 원소입니다. 235와 238은 원자의 질량수를 나타내지요. 우라늄은 99.2% 이상이 질량수 238로 존재하며 질량수 235인 우라늄은 전체의 0.7% 정도입니다.

 

 우라늄-235의 원자핵을 중성자가 강타하면 원자핵이 크립톤과 바륨으로 분리되면서 중성자 3개를 생성하거나 크세논과 스트론튬으로 분리되면서 중성자 2개를 내놓습니다. 우라늄은 핵분열을 할 때 여러 개의 중성자를 생성하는 특징 때문에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보통 화학반응의 1억 배에 가까운 에너지를 방출하지요. 이런 우라늄의 핵분열 연쇄반응을 조절해 유지하며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가 바로 원자로입니다. 

 


한국의 핵 관련 연구는 더욱 적극적인 활용기술 개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우리나라에 핵을 이용한 기술이 도입된 것은 60여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1956년 과학기술에 관한 정부조직으로는 처음으로 문교부 산하에 원자력과가 신설되면서 핵 이용 연구가 시작되었는데요. 1962년 첫 연구용 원자로가 가동되며 본격화된 한국의 관련 산업은 이제 중형차 100만대, 대형항공기 60대 가격에 달하는 한국형 원전을 해외에 수출할 만큼 국제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성장을 보이며 핵의 평화적 이용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게 된 것이지요.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한 융합기술 역시 활용 범위가 무척 넓은데요. 방사선은 물체를 투과하거나 이온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핵의학 분야에서는 방사선이 엑스선촬영과 CT, MRI, 각종 항암치료와 한국이 수술법을 개척한 감마나이프 등 정밀한 질병진단과 치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자기장을 이용해 인체 내부의 이미지를 얻는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법)는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측정해 영상으로 만드는 진단장치입니다.  우리 몸 속의 수소 원자핵은 평소에 회전운동을 하다가 강한 자기장 아래 놓이면 팽이처럼 기우뚱한 세차운동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고주파를 가하면 고에너지 상태가 되었다가 끊으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외부에서 가해진 고주파와 똑같은 형태의 고주파를 방출하는데요. 이렇게 원자핵이 방출하는 고주파를 모아 영상화한 것이 MRI입니다.

 

 산업 분야에서도 방사선원을 이용한 품질검사와 유해물질 분석, 식품보존과 품종개량 등 기존 제조업부터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친환경산업까지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원자력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더욱 적극적인 활용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는데요. 방사선을 이용한 의약·바이오 기술은 물론 문화재 조사, 우주항공 분야 고방사선 인증, 해양원자력시스템과 중성자 비파괴검사 개발 등이 새롭게 주목받는 활용분야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비파괴 검사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중성자 비파괴검사 기술은 핵분열과 핵융합반응에서 발생하는 중성자를 산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성자는 철, 알루미늄, 니켈, 납 같은 무거운 금속물질을 잘 투과하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또 침투 정도가 기존 초음파나 방사선 장치보다 훨씬 깊어 물체의 내부를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지요. 중성자 비파괴 검사는 특히 기존의 장비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데요. 폭발적으로 사용량이 확대되고 있는 이차전지의 경우 수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중성자가 특히 수소와 반응도가 높기 때문에 중성자 비파괴검사 장비에 대한 수요 역시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동일한 공구제품을 엑스선(왼쪽)과 고속중성자 기술(오른쪽)로 촬영한 모습

 


고속중성자 비파괴검사 기술이 궁금하다면? “속을 모르겠다고?” KSTAR 중성자면 OK!
     

 

미래가 더 기대되는 ‘핵’


 핵이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라고 무조건 사용하지 않는 것과 핵을 잘 다룰 줄 아는 기술을 개발하여 인류에게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이 모두 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원자의 핵을 이용한 과학기술 중 가장 큰 기대를 얻고 있는 것은 역시 핵융합입니다.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존재해온 핵융합은 무한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높은 효율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핵융합은 ‘핵’이란 단어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한 순간에 긍정으로 돌려세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벌이 마시면 꿀이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문명의 이기들이 그렇듯이 핵을 이용한 과학기술 역시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지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핵무기와 같은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핵융합과 같은 인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2018년 6월, 분열과 대립으로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해온 두 정상의 악수가 한민족은 물론 세계인 모두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핵과 핵이 융합해 놀라운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핵융합반응처럼, 이들의 만남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향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진보의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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