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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7

과학+공학의 최전선, 핵융합 장치의 핵심 ‘디버터’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862

 핵융합 장치는 과학(Science)과 공학(Engineering)이 만나고 부딪히는 현대 과학기술의 최전선입니다. 이론적 해석이 나오면 이것을 실제 장치로 구현하고, 다시 계산하고 분석하면 또 이것을 장치에 적용하며 ‘꿈의 에너지’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데요.

 

 핵융합에 필요한 모든 장치가 그렇지만, 최첨단의 과학과 공학이 가장 첨예하게 만나고 부딪히는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디버터(diverter)‘인데요.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가 각자, 혹은 머리를 맞대고 완벽한 디버터를 구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핵융합 장치의 난제인데요. 디버터는 핵융합 장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그걸 만드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과학과 공학의 세계가 뒤섞인 디버터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ITER 개발진이 ITER에 사용될 디버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ITER>

 


진공용기 보호와 불순물 제거 역할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고, 이 플라즈마를 가두는 그릇 역할을 하는 핵융합 장치가 필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핵융합 장치인 토카막 장치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진공 용기 속에 넣고,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즈마가 벽에 닿지 않게 가두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합니다.

 

 이러한 핵융합 장치에서 디버터의 역할을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진공용기 보호와 불순물 제거인데요. 우선 진공용기 보호부터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1억도 이상에 달하는 초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가 만들어지면 고온의 열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직접 진공 용기에 접촉하면 용기가 녹거나 손상을 입게 됩니다. 여기서 온도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열속(heat flux),- 즉 어떤 단면을 단위시간과 단위면적당 통과하는 열량입니다. 이 열속이 진공 용기에 닿기 전에 일차적으로 빼주는 내벽 역할을 하는 장치가 바로 디버터입니다.

 

 불순물 제거도 디버터의 핵심적인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초고온의 플라즈마 상태의 중수소와 삼중수소 간 핵융합 반응의 결과로 헬륨과 중성자가 나옵니다. 헬륨이 이온화한 상태를 알파 입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시 플라즈마를 가열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진공 용기 내부에 마치 재처럼 남게 되는데요. 불순물인 셈입니다. 불순물은 고온·고순도의 플라즈마 발생을 방해하기 때문에 디버터가 진공 용기 내부에 남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디버터시스템연구팀의 이형호 박사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의 열은 바깥으로 계속 빠져나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토카막(Tokamak)이든 스텔러레이터(Stellarator)이든 현재의 핵융합 장치에서는 이 빠져나가려는 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려면 플라즈마 자기장 형상을 D자 형태로 만들어 한쪽이나 양쪽 끝에 열이 집속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워낙 열이 높기 때문에 이것을 일차적으로 막아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진공 용기 하단의 파인 부분에 디버터를 달아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합니다.”

 


ITER와 KSTAR의 디버터 위치와 역할

 


디버터 없으면 고온 핵융합 플라즈마 불가능

 

 설명을 듣고 보니 디버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핵융합 장치의 플라즈마 발생과 H-모드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핵융합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H-모드’라는 용어를 한두 번씩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지난 2010년 우리의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가 초전도 장치로는 세계 최초로 H-모드를 달성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죠.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 운전에서 플라즈마의 성능이 약 2배로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요. 모든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의 목표이자, 플라즈마의 성능을 증명하는 운전 모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에서 H-모드를 달성하려면 플라즈마가 D자 형으로 발생·제어되어야 합니다. KSTAR에서는 지난 2009년 원형으로 발생했던 플라즈마를 D자 형으로 바꾸면서 H-모드가 가능해졌는데요. 원형 플라즈마는 진공 용기 내벽과 플라즈마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불가피하고 플라즈마의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때 플라즈마를 원형보다 길쭉한 형태의 D형으로 만들게 되면, 진공용기 내벽과의 거리가 멀어지며 이형호 박사가 설명한 것처럼 열이 한쪽이나 양쪽 끝으로 집속하기 때문에 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죠.

 

 다만 이렇게 끝으로 집속된 플라즈마의 열이 진공 용기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데요. 디버터라는 장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버터 없이는 H-모드가 불가능하고, 이것은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 발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버터가 핵융합 장치에서 얼마나 핵심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원형 플라즈마(왼쪽)과 D형 플라즈마

 


소재와 가공 기술의 한계 뛰어넘어야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디버터를 만들어 진공 용기 끝에 장착만 하면 됩니다. 문제 끝! 그런데 여기서부터 공학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런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디버터를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에는 디버터시스템연구팀 김경민 팀장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어떻게 보면 고온을 견디고 불순물을 배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를 만드는 일은 아주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게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소재가 없다는 게 문제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고온만 견디면 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즈마를 발생시킬 때 나오는 중성자도 견뎌야 합니다. 핵융합 플라즈마 발생 장치에서 중성자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규명한 실험 데이터는 아직 없어요.”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데요. 그렇다고 디버터를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KSTAR에도 있고, 국제 공동으로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도 있습니다. 다만 KSTAR 정도의 연구 장치 수준에서는 흑연(탄소) 소재의 타일로도 충분하지만, ITER나 우리가 핵융합로 상용화 검증을 위해 건설하려고 하는 K-DEMO(핵융합 실증로) 수준의 진공 용기에서는 텅스텐을 사용해야 합니다.

 

붉은 동그라미 표시 부분이 ITER의 디버터


 현재는 ITER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델이 디버터의 기본적인 표준모델입니다. 말하자면 ITER에 장착한 디버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문제는 우리가 핵융합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일부 분야에서는 전 세계 핵융합 기술을 리드하고 있지만, 디버터 만큼은 아직 필요한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만약 지금 당장 핵융합로 데모를 건설한다면 수입해서 쓸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제품이 그렇듯 해당 기술을 보유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비싸게 받겠죠.

 

 디버터는 하는 역할만큼이나 제작도 까다로운데요. 순도 높은 텅스텐 소재를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습니다. 디버터는 내벽 재료인 텅스텐과 냉각제인 구리합금을 붙여서 제작하는데 두 재료의 성질이 워낙 다른 데다 열팽창률도 4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고난도의 접합 공정이 필요합니다. 또 효율적인 열전달을 위해 텅스텐을 12mm 정도 크기로 잘라 블록 형태로 만들어 연결하게 됩니다.

 

 

사이언스와 엔지니어 융합으로 문제 해결

 

 하지만 팔짱 끼고 그냥 보고만 있을 우리 개발진이 아닙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선행기술연구센터 DEMO 기술연구부 산하에 디버터시스템연구팀을 만들었는데요. 이렇게 중요한 디버터를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는 취지입니다. 무엇보다 디버터시스템연구팀이 특별한 것은 과학자와 공학자가 한 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인데요.

 

 김경민 팀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기관 차원에서 이렇게 사이언티스트와 엔지니어를 섞어 한 팀으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연히 플라즈마 물리 이론을 맡은 쪽에서는 소재나 실제 조립 등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하는 경우가 있고, 소재나 접합·냉각 등을 맡은 쪽에서는 공학적으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플라즈마 발생을 제어해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기술적 검토와 디자인 단계부터 이렇게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시간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도 높이고 있습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디버터시스템연구팀의 김경민 팀장(오른쪽)과 이형호 박사


 승객을 가득 태운 여객기가 회항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화장실이 막혀서’라고 합니다. 사소한 부분 하나가 여객기 운항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겠죠? 디버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형호 박사는 “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를 만들고, 핵융합 결과물인 중성자의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기술이 완성되더라도 디버터가 없으면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라면서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이언스와 엔지니어 양쪽의 팀워크와 호흡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핵융합은 과학과 공학이 모든 힘을 쏟아내 총력전을 벌이는 20세기 이후 최고의 대역사(大役事)입니다. 수레바퀴가 두 바퀴로 움직이는 것처럼 핵융합 역시 과학과 공학이라는 두 바퀴로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디버터로 시작해 DEMO(핵융합 실증로) 건설, 나아가 상용 핵융합로 건설이 성공하는 그날까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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