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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인터뷰]플라즈마도 건강한 일탈이 필요하다. - PPPL 박종규 박사

이하나   
https://fusionnow.nfri.re.kr/post/nuclear-fusion/875

 ‘정해진 길이나 영역에서 벗어남.’ 일탈(逸脫)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뜻이 강합니다. 규범에서 어긋나는 행동이 사회에 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건강한 공동체는 종종 적당한 수준의 일탈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일시적으로 금기가 허용되는 카니발, 본능적인 공격성을 스포츠로 해소하는 국가 대항전, 다양한 종류의 상상이 허락되는 영화와 소설 등의 창작 행위로 억눌린 대중의 무의식에 숨구멍을 틔워주는 것이지요. 이런 건강한 일탈은 사회적 긴장완화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핵융합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9월 ‘네이처 물리학(Nature Physics)’에는 한국인 핵융합 연구자들의 논문 한 편이 비중 있게 소개됐습니다. ‘토카막 플라즈마의 비대칭 자기장 위상공간 제어’라는 긴 이름의 이 논문은 KSTAR가 올해 거둔 수확 중에서도 최대어로 꼽히고 있는데요. 제1저자인 박종규 박사를 만나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논문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독창적인 연구 아이디어로 세계 핵융합계를 놀라게 한 그는 “KSTAR의 다채로운 성능이 아니었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실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험을 위해 올해에도 국가핵융합연구소를 찾은 박종규 박사

 

|“균일한 대칭성은 도넛 모양 토카막의 강점이자 약점”

 박종규 박사는 미국 프린스턴 플라즈마물리연구소(Princeton Plasma Physics Laboratory, PPPL)에 몸담고 있습니다. KSTAR 건설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2000년대 초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교수님과 함께 시뮬레이션 작업 등에 참여하며 핵융합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는데요. 토카막 장치와 플라즈마 물리 이론에 대해 더욱 심도 깊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 핵융합 연구의 태동지 중 한 곳인 미국행을 결심합니다.

 PPPL은 미국 에너지부(DOE)와 프린스턴 대학이 운영하는 국립연구소입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핵융합과 플라즈마 물리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배출하고 있는 유서 깊은 핵융합 연구기관이지요. 이곳은 현재도 수백명의 연구팀이 매년 우수한 실험결과를 내놓고 있는데요. 특히 주목할 점은 PPPL이 세계 최고 성능의 초전도 토카막인 KSTAR를 보유한 우리나라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와 공감대의 폭이 무척 넓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박종규 박사도 누구 못지않게 KSTAR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연구자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비대칭 자기장’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요. 도넛 모양의 토카막 핵융합 장치는 그 수직 단면의 어느 곳에서나 균일한 플라즈마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균형 잡힌 자기장의 형상 덕분에 복잡한 모양의 스텔러레이터나 자기거울 방식 핵융합장치가 낼 수 없는 플라즈마 온도와 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완벽한 도넛 대칭성에 기반한 토카막 장치에서도 현실적으로는 플라즈마를 가두는 자기장에 미세한 불균형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인해 토카막 플라즈마엔 각종 불안정성과 효율 저하가 생길 수 있는데요. 놀라운 것은, 토카막 장치와 운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비대칭성들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장 핵융합의 난제이자 마법 중 하나로 손꼽히는 3차원 '비대칭성'의 영역입니다.


유서깊은 미국의 핵융합 연구기관 PPPL 전경모습

 

충돌하는 ELM 제어와 고성능 플라즈마 유지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대칭 자기장을 이용한 ELM 현상의 제어입니다. ELM (Edge Localized Mode)플라즈마의 경계면에서 큰 압력 차이로 발생하는 불안정성이 순간적으로 경계면을 무너뜨리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입니다. 24시간 365일 안정적으로 핵융합 발전소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이 ELM 현상을 잘 제어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도전입니다. 기존의 이론과 실험에서는 플라즈마 경계면을 제어하면 중심부의 성능이 약해지고, 중심부의 고성능 플라즈마를 강화하면 다시 경계면 불안정이 높아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박종규 박사는 바로 토카막의 성능과 제어,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비대칭 자기장 활용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습니다.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많은 3차원 비대칭 자기장들 중 극히 일부만 가지고 있는, 그 '착한' 잠재력을 예측하고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면 수없이 많은 비대칭 자기장을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핵융합장치가 필요합니다. PPPL이 운영하는 NSTX-U (National Spherical Torus Experiment - Upgrade) 장치를 포함해서 전 세계 어느 토카막에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실험이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국 땅에 KSTAR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KSTAR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정교함’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3열 3차원 제어코일 등 다양한 전자석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핵융합장치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비대칭 자기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공동연구를 위해 미국과 한국을 자주 오가며 KSTAR의 독보적인 특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결국 이번 논문의 아이디어로 이어진 것이지요.”


한국의 인공태양 KSTAR. 전 세계 핵융합 연구장치중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치로 손꼽힌다.

 

KSTAR 정교함이 독창적 아이디어의 샘”

 KSTAR 연구진에게도 ELM 제어는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KSTAR는 특히 향후 가동될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의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 큰 도전과제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2016년 세계 최초로 자기장에 의해 생성된 플라즈마 표면 난류를 관측해 ELM과의 상호작용을 밝힌 데 이어, 지난해에는 세계 최장 시간인 34초 간 ELM 제어에도 성공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의 비대칭성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은 부족했습니다. KSTAR 연구진은 그동안 3차원 비대칭 자기장의 세기와 구조를 조절해보는 숱한 실험과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경험적으로 ELM 제어 시간을 늘려왔습니다. 이러한 자기장의 세기와 구조를 효과적으로 최적화하는 이론이 필요했지요.

 그러던 차에 전해진 박종규 박사의 혁신적인 실험 제안은 모두를 흥분시킬 만한 것이었습니다. KSTAR의 정교한 자기장 형성 능력을 이용하면 플라즈마 경계면의 ELM을 제어하면서도 중심부 플라즈마 성능엔 영향을 최소화 시킬수 있는 비대칭 자기장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짧은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며 KSTAR 연구진들과 마지막까지 의견을 나누는 박종규 박사.

 

 

쏟아지는 데이터에 밤잠을 설치다

 그동안 3차원 자기장을 이용해 ELM 억제 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론은 여러 가지가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론에 그쳤을 뿐 실험을 통해 검증된 바가 없었지요. 반면 KSTAR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된 박종규 박사의 실험 예측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은 외려 더 높았습니다. 더구나 그 성공이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것이라 모두에게 더 의미가 각별했습니다.

 박종규 박사는 2016년 KSTAR 캠페인 기간 중에 잡힌 첫 실험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입국수속을 마치자마자 급하게 전달된 이메일 한통을 확인하게 되지요. “KSTAR의 장치 보완이 필요해 불가피하게 실험 일정을 뒤로 미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나오기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고민하다가 결국 양국을 연결하는 화상회의를 통해 원격실험을 진행하게 됐지요. 현장에서 실험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했지만, 오랜시간 KSTAR 연구진과 맞춰온 호흡 덕분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와 KSTAR 연구진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박종규 박사가 예측한 실험조건들을 입력하자 KSTAR는 다차원 자기장을 통해 예측된 그대로 정확히 ELM 현상을 제어했지요. 그날 쏟아지는 데이터를 확인하며 샘처럼 솟구치는 엔도르핀은 결국 양국의 연구자들 모두를 잠 못 들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박종규 박사는 이번 논문과 후속 연구가 ELM의 상시 제어를 넘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대칭 3차원 자기장의 잠재력을 이용해 핵융합 장치를 보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이끄는 첫 단추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연구성과 발표 이후 KSTAR 캠페인을 찾는 PPPL 연구자들의 수도 전에 없이 늘고 있습니다.

 그는 또 “토카막 경계면에서 플라즈마 불안정성이 발생하는 것은 땅 속의 응축된 에너지가 한 번씩 지진으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설명하는데요. 종종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는 토카막의 대칭성에 비대칭성으로 조화를 더할 수 있다는 이번 연구 성과의 의미를 듣고 있자니 문득 ‘사람이든 사회든 자연이든 지나친 완벽함은 결국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건강한 일탈이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 듯, 속속 밝혀지게 될 비대칭 자기장의 새로운 역할을 통해 핵융합이 보다 성숙하고 안정적인 미래 에너지원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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