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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1

[남박사의 세시풍속 11화] 살아가는 요령

시스템 관리자   
https://fusionnow.nfri.re.kr/post/peoples/366


이번 설 연휴는 이틀만 휴가를 내면 내리 구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였죠. 양가 부모님을 방문해야 하니 온전히 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맞는 긴 연휴에 기대가 컸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어딘가 시원치 않다 싶더니 결국 연휴가 시작되는 일요일부터 몸살이 나 버렸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하루 이틀 앓고 나면 개운해지곤 했는데 사십대가 된 티를 내는 건 지 일주일을 꼬박 골골대며 연휴를 다 보내고 나서야 몸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불똥이 튄 건 아내였죠. 물론 비실대는 남편이 안스럽고 걱정되는 마음이 가장 컸다고 믿고 싶지만, 가뜩이나 명절 스트레스도 있는데 일을 좀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짐이 되어 버린 남편이 야속한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아픈 기색이라도 보일라치면 어서 약을 먹고 푹 쉬어야 빨리 낫지 않겠냐, 아니 아예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맞는 건 어떠냐며 어떻게든 제가 빨리 나아야 자신도 살겠다는 눈치를 주더군요.

 

하지만 그동안 주워들은 의학 상식으로 감기란 것에는 약이 따로 없으며 시간이 지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아는 저는 한사코 약을 먹는 건 거부하였습니다. 감기약은 먹어봐야 소용없다, 오히려 심한 것만 아니라면 아프면 아픈대로 열이 나면 나는대로 놔두는 것이 병이 낫는데 더 도움이 된다며 연설을 늘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눈 앞에 들이밀고서야 겨우 못 이기는 척 약을 먹었죠.

 

하지만 가뜩이나 들을 리 없는 약이 이건 효과가 있을 리 없다고 믿는 걸 넘어서 혹시라도 효과가 있어서 그 동안 늘어 놓은 말들이 겸연쩍어 질까 걱정하는 사람에게 들을 리 만무했죠.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어서 인지 에라 모르겠다며 주는대로 받아 먹은 한방 생약이 얹혀서 인지 감기 몸살에 소화 불량까지 덤으로 더해 일주일을 꼬박 앓고서야 아픈 기운을 떨쳐낼 수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제가 괜찮아 지자 이제 아내가 얼굴이 벌개지며 이불을 뒤집어 쓰더군요. 명절 연휴 동안 고생한데다가 친정에 와 마음이 풀려서 인지 이번에는 아내에게 감기 몸살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겁이 덜컥 나더군요. 솔직히 연휴를 골골대며 날린 것도 억울한데 겨우 하루 이틀 제대로 쉬어보려고 했더니 아내 대신 애들 챙기다가 끝나겠구나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입장이 바뀌자 이번에는 제 입에서 약이라도 좀 먹어 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아내가 건강해져야 내가 살겠다는 생각이 들자 약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은 둘째치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거죠. 물론 그동안 떠벌여 놓은 것들이 있으니 차마 약을 먹으라는 소리는 못하고 그냥 푹 쉬라고만 했습니다.

 

설령 효과는 없더라도 그 약 먹는다고 큰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아내가 약 먹으라고 할 때 먹으면서 마음이라도 좀 편하게 해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뜩이나 병 수발 신세지는데 말 잘 듣는 남편 흉내라도 내서 점수 좀 만회하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들어서 고집을 피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살아가는 요령이 부족했던 거죠. 머리로만 생각하며 살다보면 항상 놓치는 것이 이런 부분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요령이라도 좀 늘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 Fusion Now 블로그에서는 '남박사의 세시풍속'을 매월 한 편씩 연재하고 있습니다. 남용운 박사님은 현재 KSTAR 연구센터 플라즈마수송연구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13년 네티즌과 함께하는 '핵융합 토크 콘서트'에서 김태양 박사 役을 맡아 참가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가핵융합연구소 내부 채널 토러스(Torus)를 통해 핵융합 연구자로서 느끼는 연구소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해왔는데요. 그 중 발췌한 일부와 다양한 새로운 주제들로 국가핵융합연구소 공식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소통하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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