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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남박사의 세시풍속] 18화 – 가족의 힘

시스템 관리자   
https://fusionnow.nfri.re.kr/post/peoples/415


우리 연구소가 벌써 개소한 지 10년이 되었더군요.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생긴 것이 제가 대전에 내려와 연구소에 입사한 첫 해였으니까 대전 생활을 한 것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이듬해에 결혼을 하였으니 결혼한 지도 9년째고 첫째 아이의 나이가 우리 나라 나이로 아홉 살입니다. 아버지가 30년 넘게 다니시던 직장에서 정년 퇴직을 하신 지도 8년이 넘었네요. 생각해보면 순식간에 지나간 10년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가장 달라진 것은 가족이 늘었다는 거겠지요.

 

항상 곁에 두고 봐서 매일 똑 같은 것 같은 아이이지만 가끔 부쩍 컸다는 걸 느낍니다. 얼마 전에는 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보고 조심하라고 하면서 칼 쓰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했더니 태연스럽게 몇 번 다쳐봐서 느낌을 알기 때문에 별로 안 무섭다고 하더군요. 사소하긴 하지만 벌써 아픔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두려운 아이였지만 크고 작은 아픔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성장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죠. 제 경우에는 이십 대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하던 시기였다면 삼십 대가 되면서부터는 제가 받는 상처들을 조금씩 치유해 나가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서는 익숙하지 않은 면도기로 턱수염을 깎다가 그만 살이 좀 크게 베이고 만 일이 있었습니다. 아픈 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배어 나온 핏자국이 남는 게 좀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런데 명절이라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그걸 보시더니 침을 묻혀 핏자국을 닦아 주셨습니다. 평소에야 다 큰 아들에게 그러시진 않으시겠죠. 그런데 절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왠지 제가 어린 아들을 보는 눈빛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잠자코 핏자국을 닦아 주시는 걸 내버려 두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제 상처를 닦아 주시면서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제가 살을 벨 때 느꼈던 따끔함을 느끼셨겠죠. 저 역시 언젠가는 아들의 상처를 같이 아파해 줄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당당히 세상과 맞설 수 있겠죠. 제가 삼십 대가 되면서 좀 더 유연해지고 여유로워 진 것 역시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가족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연구소 역시 많은 일을 해 왔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서로간의 경쟁이 강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서로의 성취를 함께 기뻐해 주고 단점을 서로 보완해주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좀 더 늘어난다면 그런 힘을 바탕으로 우리 연구소가 좀 더 큰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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